
세상에 이런 라면이 또 있을까.
굵고 쫄깃한 면발은 마치 삶의 굴곡 같고,
다시마 한 장은 그 속 깊은 국물의 철학자요.
국물 한 모금에 피곤했던 오늘 하루가 녹아내린다.
오늘의 메뉴는 농심 너구리 – 얼큰한 맛.
매콤하고 진한 국물이 일품이라, 한겨울 산속에서도 여름철 에어컨 아래서도
그 존재감이 뚜렷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MSG, 일명 마법의 가루를 살짝—아니, 당당하게 한 스푼 추가한다.


요즘 라면들 보면 죄다 “MSG 무첨가”를 외친다.
건강을 챙긴다며, 순한 맛을 내세우는데...
솔직히 말해서, 건강 생각할 거면 라면을 왜 먹는가!
라면은 죄책감 없이 폭풍처럼 들이켜야 제맛이다.
나는 MSG를 아낌없이 넣는 깊은 맛파다.









작은 부스터에 불을 켜고, 코펠 바닥에 다시마를 깔고
그 위에 반듯하게 눌린 너구리 면을 올린다.
그 위로 건더기 스프, 분말 스프를 살포시 뿌리면
곧이어 끓어오르는 라면물 위로
인생의 잔상들이 피어오른다.
면발이 끓어오르며 꼬인다.
내 인생처럼, 꼬이고 꼬였던 수많은 밤들.
고시원 좁은 방 안에서 배고파 눈 비비며 끓여 먹던 라면 한 그릇,
서울 올라와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던 그 시절,
지금은 사무실에서, 남 눈치 안 보고 끓여 먹는
가장 쉽고 확실한 한 끼.

오늘도 첫 끼는 라면이다.
나이 탓인지 꼬들한 면발은 이제 부담스럽다.
적당히 익은 면이 부드럽게 넘어가야,
속이 편하다. 인생도 라면처럼, 적당히 익은 게 좋다.


마지막으로 마법의 가루를 톡—
우아하게 젓가락질을 하고 나면,
붉고 진한 국물 속에
한 끼의 위로, 하루의 피로, 삶의 애환이
스며들어 간다.
결국 완식.
그 어떤 요리보다 빠르고 확실한 만족.
학창 시절엔 배고파서 먹었고,
고시원 시절엔 돈 없어 먹었고,
지금은 그저 만만한 한 끼라서 먹는다.
하지만 언제나,
라면은 내 인생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