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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테마는 ‘TURN ON’이다. 영어권에서 ‘turn on’은 전원을 켠다는 뜻과 함께 성적으로 흥분시키거나 욕망을 깨운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주최 측은 그 중의적인 표현을 행사장 곳곳에 걸었다. 제품의 스위치를 켜고, 관람객의 호기심도 함께 켜겠다는 속내다. 무대에 오른 퍼포먼스는 그 의미를 한층 노골적으로 풀어냈다. 로프를 이용한 SM 공연이 시작되자 주변 통로가 빠르게 막혔다. 여성 모델의 가슴 아래와 허리, 허벅지를 따라 굵은 로프가 감겼다. 매듭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피부가 안쪽으로 눌렸고 밀려난 살은 로프 위로 도드라졌다. 진행자가 줄을 당기자 모델의 허리가 꺾이고 다리의 각도도 달라졌다. 관객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녹화 버튼부터 눌렀다. 공연 자체가 촬영을 전제로 진행되니 카메라를 숨길 이유도 없었다. 앞사람의 어깨 사이로 렌즈를 밀어 넣고 화면을 확대하는 모습도 보였다. 진행자는 로프를 거는 순서와 모델의 상태를 확인하는 신호를 설명했다. 힘을 받아도 되는 부위와 피해야 할 지점, 손발의 감각이 둔해질 때 보내는 신호도 함께 안내했다. 묶는 행위만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얼마나 조이고 언제 풀어야 하는지까지 설명하는 시연에 가까웠다. 잠시 뒤 채찍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허공을 갈라 소리만 내거나 엉덩이 위를 가볍게 훑었다. 몇 차례 오가던 채찍은 점점 속도를 높였다. ‘착.’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무대 밖까지 튀었다. 채찍 끝이 엉덩이와 허벅지에 닿을 때마다 모델의 몸이 움찔했고 맞은 자리에는 붉은 기운이 올라왔다. 몇몇 관객은 웃었고, 몇몇은 휴대전화 화면을 더 크게 벌렸다. 렌즈 안에는 로프에 눌린 살과 채찍이 닿는 순간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필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은 여기까지다. 묶고, 때리고, 고통에 반응하는 몸을 바라보며 쾌감을 얻는 광경이 솔직히 조금 역겨웠다. SM이 취향이 아닌 탓도 있을 것이다. 서로 합의한 연출이고 숙련된 퍼포머가 진행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 사실이 눈앞에서 들리는 채찍 소리까지 무디게 만들지는 못했다. 가학과 외설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소리가 거칠어질수록 속이 메스꺼워졌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손도 멈췄다. 호기심으로 다가갔다가 강한 거부감을 안고 적나라한 현장을 이탈했다. AAE가 현장에서 성을 상품화 하는 방식은 보통 이런 식이다. 욕망으로 사람을 불러 모은 자리에 신제품을 나열했다. 브랜드별 판매 수완도 제법 능숙했다. 흡입과 진동을 동시에 구현한 여성용 제품 옆에는 세정제와 윤활제가 놓였고, 남성용 기구 뒤에는 교체용 슬리브와 전용 건조기가 따라붙었다. 제품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씻고 말리는 과정까지 한 묶음으로 팔았다. 강한 자극을 내세운 제품은 수면과 스트레스 완화, 커플 관계, 셀프케어라는 문구를 둘러 안심을 유도했다. ‘더 세게’와 ‘더 건강하게’가 같은 진열대에서 맞이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자 카메라 메모리에는 한국의 일반 기사에서 다루기 힘든 사진이 가득 찼다. 성기 모양을 그대로 본뜬 진동기, 질과 항문의 단면을 드러낸 남성용 기구, 다리를 벌린 리얼돌, 로프에 묶인 모델, 채찍이 피부에 닿는 순간. 평소라면 모자이크부터 고민했을 장면이 AAE 현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러져서 바이어를 맞는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 처음 들렀던 부스를 다시 지나쳤다. 직원은 여전히 관람객을 상대로 같은 말을 건넸다. “한번 만져보세요.” 버튼을 누르자 작은 모터가 다시 울렸다. 진동의 세기를 보여주려고 수조 안에 넣어둔 제품 주변으로 동심원이 빠르게 번졌다. 단계를 높이자 잔잔하던 물결이 수조 벽에 부딪힐 정도로 거칠어졌다. 옆 부스의 시연 장치에서는 물이 분수처럼 솟았다. 성기 주변에 바르면 수시간 동안 발열감이 이어진다는 크림도 있었다. 직원이 손등에 쌀알만큼 덜어 문질러줬다. 처음에는 끈적한 젤이 묻은 느낌뿐이었지만 몇 분이 지나자 피부 안쪽에서 열이 올라왔다. 전시장을 벗어날 때까지 화끈거림이 가시지 않았다. 손바닥에는 진동이, 손등에는 열감이 남았다. 카메라에는 쉽게 꺼내놓기 어려운 사진이 수백 장 쌓였다. AAE는 나름의 방식으로 제품을 확인시키고, 민망함을 호기심으로 바꾸고, 호기심에 가격표를 붙였다. 성을 숨기지 않으니 욕망은 훨씬 구체적인 산업이 됐다.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민망하다는 이유로 제품을 숨기고 택배 송장의 표기까지 숨긴다. 분명한 건 성적 욕구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시장이 커질수록 취향도 세분화된다. 맨 정신에는 낯뜨거운 물건이지만 술이 들어가면 돈을 내고 사는 취향의 물건이 된다. 성인용품 산업이 계속 커지는 이유도 그 이상으로 복잡하지 않다. 숨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님을 더 늦기 전에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 사실 지금도 늦긴 했다. 이미 관리 사각지대에서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기에! @happyzon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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