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TOP 20
일간 l 주간 l 월간
1
[컴퓨터] 엔비디아, 전 세계 AI 에이전트 구동 위한 ‘베라 CPU’ 출시
2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시소닉, AI시대를 가동하는 심장을 만든다
3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Leadtek, 쿼드로의 기억을 AI 인프라로 확장하다
4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KLEVV, SK hynix 기반 위에 브랜드 감각을 입히다
5
[이슈/논란] MissAV, 저작권 침해 소송에 직면: 사건 경위 및 성인 스트리밍 업계에 미치는 영향
6
[일상/생활] 여사친을 여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뇌 속 남성
7
[전자부품] 5월 25일 부처님오신날 대체공휴일 안내
8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Thermal Grizzly Roman 'der8auer' Hartung CEO 인터뷰
9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G.SKILL, 오버클럭 문화 위에서 고성능 메모리의 다음 영역을 보다
10
[컴퓨터] 마이크로닉스, ‘2026 KEL 슈퍼위크 경기, 플레이엑스포 스폰서 참여
11
[컴퓨터] MSI, 일상부터 게이밍까지 올라운더 데스크탑 '코덱스' 출시
12
[컴퓨터] 서린씨앤아이, 가스 스프링 방식의 고성능 모니터 암 아틱 X1-3D 출시
13
[컴퓨터] 맥스엘리트, 독보적 스펙과 합리적 가치 ‘STARS ARIES’ 3종 출시
14
[컴퓨터] ‘글로벌 전략 제품 공개’ 마이크로닉스, 컴퓨텍스 2026 참가
15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쿨러 명가의 자존심, 이제 ‘K-잘만’으로 쓴다
16
[컴퓨터] 엔비디아, 아이작 GR00T 휴머노이드 로봇 레퍼런스 디자인 공개
17
[일상/생활] 24살 아빠에게 중고차 2500원에 선물한 충주맨
18
[이슈/논란] 페이커 조모 살해 협박범이 있네요
19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AGI, 세분화된 라인업으로 한국 메모리·스토리지 시장 공략
1
[컴퓨터] 엔비디아, 전 세계 AI 에이전트 구동 위한 ‘베라 CPU’ 출시
2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잘만테크, 기본기에 더해 체감할 수 있는 혁신을 추구한다
3
[이슈/논란] MissAV, 저작권 침해 소송에 직면: 사건 경위 및 성인 스트리밍 업계에 미치는 영향
4
[이슈/논란] 윈도우 11업데이트 조심하세요. (KB5089549) (26200.8457)
5
[일상/생활] 일본인들, 한국의 조선총독부 철거 이유 눈치 채다
6
[가전] 밀레코리아, 상판 전체 활용 ‘풀서피스(Full-surface) 인덕션’ 출시
7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시소닉, AI시대를 가동하는 심장을 만든다
8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Altos, Acer의 AI 서버 전략을 한국 시장으로 가져오다
9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KLEVV, SK hynix 기반 위에 브랜드 감각을 입히다
10
[일상/생활]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네요
11
[일상/생활] 철권 텍킹 달성 후기: 상위 스테이지 진입 완전 무력함
12
[일상/생활] 예비군 불참 잡는 경찰의 현장
13
[일상/생활] 여사친을 여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뇌 속 남성
14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믿고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 인식 만들겠다, 김상엽 과장 인터뷰
15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Leadtek, 쿼드로의 기억을 AI 인프라로 확장하다
16
[컴퓨텍스] [컴퓨텍스 2026] G.SKILL, 오버클럭 문화 위에서 고성능 메모리의 다음 영역을 보다
17
[일상/생활] 국내 자생종인데 왜 눈에 안 띄는가
구매후기 이벤트
GLP-1 주사제 들고 해외여행 갈 때 위고비·마운자로·젭바운드는 ‘짐’이 아니라 ‘온도 관리’ 필수 요즘 여행 짐을 싸는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여권, 보조배터리, 상비약, 멀티어댑터만 챙기면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간다. 위고비, 마운자로, 젭바운드 같은 GLP-1 계열 주사제. 체중 관리나 혈당 관리를 위해 매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해외여행이나 출장 때 요주의 주사제를 어떻게 들고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문제는 이들 주사제가 일반 알약처럼 아무 데나 넣어두면 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알아야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비행기에는 들고 탈 수 있다. 하지만 온도 관리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위고비는 냉장 보관 기준이 2~8℃이고, 필요할 경우 개봉 전 원래 상자에 둔 상태로 8~30℃에서 최대 28일까지 보관할 수 있다. 단, 얼리면 안 되고 빛과 고온 노출도 피해야 한다.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도 기본 보관 온도는 2~8℃다. 단회용 펜이나 바이알은 필요 시 30℃ 이하에서 최대 21일까지 냉장 없이 보관할 수 있지만, 얼었거나 30℃를 넘는 환경에 노출됐다면 사용을 피해야 한다. 그러니까 무조건 “냉장고에 못 넣으면 큰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충 가방에 넣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이들 약들은 눈으로 상했는지 바로 알기 어렵다. 여간해서는 상하지 않고, 안의 공기방울 여부에 따라 구분도 가능하다. 공기방울이 없다면 그건 상한거다. 하지만 음식처럼 냄새가 나거나 색이 확 변하는 게 아니며, 보관 실패가 약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찝찝한 부분이다. 왜 위탁수하물이 아니라 기내 반입이어야 하나 GLP-1 주사제를 여행 가방에 넣을 때 가장 먼저 기억할 원칙은 하나다. 수화물로 부치는 짐이 아니라, 손에 들고 타는 짐. 무엇보다 위탁수하물은 변수가 많다. 짐이 늦게 나오거나 분실될 수도 있고, 온도 관리도 내가 확인할 수 없다. 특히 약품은 “잠깐 얼었다가 녹으면 괜찮겠지”가 통하지 않는다. 위고비·마운자로·젭바운드 모두 얼리지 말라고 명시되어 있고, 얼었던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공항 보안검색도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미국 TSA 기준으로 의료상 필요한 액체·젤·에어로졸은 일반 액체류 100mL 제한과 별도로 합리적인 양의 반입이 허용되며, 검색대에서 따로 신고하면 된다. 냉각용 아이스팩이나 젤팩도 의료 목적이면 함께 검색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나라마다 공항 보안 분위기는 다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식은 약을 원래 포장 그대로 가져가고, 영문 처방전이나 진단서, 약품명이 적힌 서류를 함께 챙기는 것이다. 꼭 요구받지 않더라도, 설명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말보다 서류가 빠르다. 짧은 여행과 긴 여행은 준비가 다르다 2~3시간짜리 가까운 여행이라면 너무 과한 장비까지는 필요 없을 수 있다. 원래 박스에 넣은 주사제를 작은 보냉 파우치에 담고, 아이스팩이 직접 닿지 않게 천이나 완충재로 분리하면 된다. 중요한 건 “차갑게 만들기”가 아니라 “얼지 않게, 과열되지 않게 유지하기”다. 하지만 장거리 비행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항 도착 전 이동 시간, 체크인과 보안검색, 탑승 대기, 비행시간, 입국심사, 숙소 이동까지 합치면 실제로 약이 냉장고 밖에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비행시간만 7시간이라고 해도 전체 이동 시간은 12시간을 넘기기 쉽다. 이럴 때는 보냉 파우치, 젤 아이스팩, 작은 디지털 온도계를 같이 준비하는 편이 낫다. 온도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꽤 유용하다. 실제 온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스팩을 쓴다면 약과 직접 맞닿게 두지 않는 게 좋다. 냉기를 오래 유지하려다 오히려 약이 얼어버리면 최악이다. 약은 지퍼백이나 원래 박스에 넣고, 아이스팩과는 수건·파우치·칸막이로 한 번 분리해두는 식이 안전하다. 호텔 냉장고는 믿되, 맹신하지 말자 여행지에 도착하면 또 다른 변수가 나온다. 바로 숙소 냉장고다. 호텔 객실 냉장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약품 보관용 냉장고”가 아니다. 어떤 곳은 음료를 살짝 시원하게 만드는 정도고, 어떤 곳은 문을 열어보면 사실상 미지근하다. 반대로 냉각판 근처에 두면 일부 구역이 너무 차가워져 약이 얼 위험도 있다. 그래서 숙소에 도착하면 먼저 냉장고 상태를 확인하는 게 좋다. 가능하면 약을 냉장고 문쪽이나 냉각판 바로 앞에 두지 말고, 원래 상자에 넣은 채 중앙부에 보관한다. 카드키를 빼면 객실 전원이 꺼지는 구조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일부 숙소는 외출 중 냉장고 전원이 꺼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 불안하면 프런트에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의료용 주사제를 냉장 보관해야 한다”고 말하면 호텔 전용 냉장고에 보관해주거나, 얼음 버킷을 제공해주는 경우가 있다. 다만 얼음에 직접 약을 넣는 것은 피해야 한다. 물이 새거나, 국소적으로 얼어버릴 수 있다. 약은 방수 지퍼백에 넣고, 얼음은 별도 공간에 둔 뒤 보냉 구조를 만드는 정도가 현실적이다. 여행 전 체크리스트 첫째, 약은 원래 포장 그대로. 박스에 약품명과 성분, 용량이 적혀 있으면 검색대나 현지에서 설명하기 훨씬 쉽다. 위고비와 마운자로·젭바운드 모두 빛을 피하기 위해 원래 상자 보관이 권장된다. 둘째, 영문 처방전 또는 영문 복약 확인서. 공항에서 반드시 확인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한개 정도는 신경도 안쓰지만, 여러개를 챙겨갈 경우엔 든든한 보험이다. 셋째, 기내 반입. 분실과 온도 변수를 줄이려면 위탁수하물은 피하는 게 맞다. TSA도 당뇨 관련 약품과 의료용 액체·젤팩은 보안검색 후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넷째, 보냉 파우치와 온도계. 특히 더운 나라, 장거리 비행, 환승 일정이라면 체감상 필수에 가깝다. 다섯째, 목적지 규정 확인. 개인 사용 목적의 처방약이라도 국가별 반입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여행 전 항공사와 목적지 세관·보건당국 안내를 확인하는 습관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주사제를 들고 여행할 때 “무조건 차갑게”만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중요한 건 일정한 온도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너무 뜨거워도 문제고, 얼어도 문제다. 햇볕 드는 차 안에 두는 것도 안 되고, 아이스팩에 직접 붙여 얼리는 것도 피해야 한다. 냉장 보관이 기본이지만, 제품별로 허용되는 실온 보관 기간이 있으니 여행 일정에 맞춰 현실적으로 준비하면 된다. 위고비는 8~30℃에서 최대 28일, 마운자로와 젭바운드 단회용 제품은 30℃ 이하에서 최대 21일이라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건 “아무렇게나 보관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온도와 빛, 동결을 피했을 때의 기준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해외여행은 설레는 일이지만, 약을 쓰는 사람에게는 작은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도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원래 포장, 영문 처방전, 기내 반입, 보냉 파우치, 숙소 냉장고 확인. 이 다섯 가지만 기억해도 대부분의 상황은 꽤 안전하게 넘길 수 있다. GLP-1 주사제는 짐처럼 다루면 안 되는 약이다. 여권 챙기듯, 보조배터리 챙기듯, 이제는 온도까지 챙기는 준비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2026.05.05
7
4
주소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17길 15 솔직한우 용산점 솔직한우 Pick 세트(450g) 고민 없이 즐기는 2~3인용 추천 한우 450g, 지금 20% 할인 가격으로 만나보세요! 140,000원 솔직한우 Pick 세트(900g) 고민 없이 즐기는 5~6인용 추천 한우 900g, 지금 20% 할인 가격으로 만나보세요! 280,000원 솔직한우 구이 메뉴 한 상 차림 1+등급부터 1++(9)등급까지 39가지 부위를 직접 골라 즐기는 특별한 한 상 차림 ! 3,000원 (런치메뉴) 한우 고기 곰탕 뽀얗게 우려낸 한우 사골 육수와 큼직한 고기의 만남! 10,900원 (런치 메뉴) 한우 육회 비빔밥 한번만 먹어 본 사람은 없다는 솔직한우 best 식사메뉴 생육회와 신선한 야채의 조화 12,800원 (런치 메뉴) 한우 소 한마리탕 소 한마리의 다양하고 맛있는 부위만 골라 담은 소 뼈를 우려낸 깊고 진한 국물의 보양식 15,800원 오랜만에 동기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다들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을 걱정하는 건 매한가지 였습니다. 저는 오래전 권고사직으로 먼저 조직에서 나왔고, 그 덕에 홀로 서는 방법을 체득했기에 그 암담함이 느껴졌습니다. 모임 장소는 용산 솔직한우 입니다. 룸으로 된 한우 집이구요. 가격은 단가가 낮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퀄리티는 최상급이구요. 귀한 손님을 모셔야 하거나 조용히 이야기 하며 식사가 필요하다면 추천합니다.
2026.05.04
2
2
후루룩 짭짭,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 이야기 배고픈 한 끼에서 세계가 찾는 K-푸드가 되기까지 어릴 적 만화 아기공룡 둘리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동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이 짧은 가사가 참 묘하다.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라면은 그렇게 먹는 음식이다. 젓가락으로 꼬불꼬불한 면발을 들어 올리고, 뜨거운 김을 후 불어가며 후루룩 들이키고, 마지막엔 얼큰한 국물 한 숟가락으로 입안을 정리한다. 그런데 라면의 진짜 마지막은 따로 있다. 면을 다 먹은 뒤 남은 국물에 찬밥을 말아 넣는 순간이다. 그때 라면은 인스턴트 음식이 아닌 한 끼 식사가 된다. 김치 한 조각만 있으면 된다. 거창한 반찬도 필요 없다. 뜨거운 국물, 불그스름하게 물든 밥알, 젓가락 끝에 걸리는 김치 한 점. 그 조합 앞에서는 산해진미도 잠시 밀린다. 라면은 그렇게 한국인의 부엌 한구석에 늘 대기하고 있는 음식이다. 돈이 없을 때, 시간이 없을 때, 속이 허할 때, 술 마신 다음 날, 비 오는 밤, 야근 끝난 새벽, 시험공부 하던 날, 군대에서 PX 다녀온 날, 한강에서 바람 맞던 날까지. 라면은 음식이면서 동시에 기억이다. 라면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한국인이 라면을 워낙 자연스럽게 먹다 보니 가끔 착각하게 된다. “라면은 원래 한국 음식 아닌가?”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1958년 일본 닛신식품의 안도 모모후쿠가 만든 ‘치킨라멘’이 현대식 인스턴트 라면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전쟁 이후 식량난을 겪던 시절, 뜨거운 물만 있으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면 요리를 만든 것이다. 한국 라면은 그보다 조금 늦게 등장했다.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하면서 한국 라면의 역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 팔린 건 아니었다. 지금이야 라면 봉지를 보면 당연히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꼬불꼬불하게 튀겨진 면은 꽤 낯선 물건이었다. 쌀밥을 먹어야 제대로 한 끼를 먹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 면이 곧바로 환영받기는 어려웠다. 라면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시대 상황이 있었다. 쌀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는 밀가루 음식을 장려했고, 라면은 값싸고 빠르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이 더해졌다. 일본에서 들어온 인스턴트 면은 한국에 와서 전혀 다른 음식이 됐다. 더 맵고, 더 얼큰하고, 더 국물 중심적인 음식으로 변했다. 여기에 김치, 계란, 파, 고춧가루, 찬밥이 붙으면서 한국식 라면 문화가 만들어졌다. 발명은 일본이 했을지 몰라도, 라면을 인생 음식으로 만든 건 한국인에 가깝다. 배고픔의 음식에서 추억의 음식으로 라면은 처음부터 별미가 아니었다. 출발은 배고픔이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라면은 값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고마운 음식이었다. 뜨거운 물과 냄비만 있으면 됐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일 여유가 없을 때, 쌀이 부족할 때, 라면 한 봉지는 꽤 든든한 해결책이었다. 그래서 라면에는 묘한 애환이 있다. 누군가에게 라면은 가난의 기억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취방의 첫 끼다. 누군가에게는 군대에서 몰래 먹던 야식이다. 누군가에게는 엄마가 늦게 오던 저녁, 형제끼리 나눠 먹던 냄비다. 누군가에게는 월급 전날 버티게 해준 마지막 식량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면은 슬프기만 한 음식이 아니다. 힘들 때 먹었던 음식인데,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진다. 돈이 없어서 먹던 음식인데, 돈이 생긴 뒤에도 가끔 일부러 끓인다. 이게 라면의 이상한 힘이다. 가난했던 기억마저 따뜻하게 만들어버린다. 왜 분식집 라면은 집 라면보다 맛있을까 라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왜 집에서 끓이면 그 맛이 안 나지?” 분식집 라면이 맛있는 이유는 대체로 단순하다. 강한 화력, 얇은 냄비, 빠른 조리, 그리고 망설임 없는 손맛. 라면은 오래 끓일수록 맛있어지는 음식이 아니다. 오히려 타이밍이 생명이다. 물이 팔팔 끓을 때 면과 스프가 들어가고, 면이 풀리기 시작할 때 적당히 뒤집어주고, 너무 익기 전에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는 이게 은근히 어렵다. 계란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고, 파를 찾고, 김치를 꺼내고, 그 사이 면은 조금씩 불어간다. 분식집 라면은 그런 고민이 없다. 그냥 빠르게 끓이고 빠르게 낸다. 그래서 맛있다. 둘리 노래에는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맛있다”는 감성이 담겨 있지만, 실제로는 구공탄보다 중요한 건 화력이다. 뜨거운 불에서 짧고 강하게 끓인 라면이 확실히 맛있다. 라면 조리법에도 각자의 공식이 있다. 스프 먼저 넣는 사람. 면 먼저 넣는 사람. 계란을 풀어야 한다는 사람. 계란은 절대 풀면 안 된다는 사람. 면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한다는 사람. 찬물을 조금 넣어야 한다는 사람. 고춧가루를 추가해야 진짜라는 사람. 라면 하나 끓이는 데도 파벌이 갈린다. 하지만 라면 맛의 핵심은 결국 하나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끓였을 때 가장 맛있다. 남이 보기엔 대충 끓인 라면이어도, 내 입에 맞으면 그게 정답이다. 한국 라면은 왜 이렇게 매워졌을까 한국 라면의 정체성은 국물에 있다. 일본 라멘이 육수와 생면의 조합이라면, 한국 라면은 봉지 안에 들어 있는 분말스프 하나로 세계관이 완성된다. 그 작은 스프 봉지 안에 짠맛, 매운맛, 감칠맛, 향이 다 들어 있다. 초기 라면은 지금처럼 맵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라면은 점점 얼큰하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신라면, 안성탕면, 진라면, 열라면, 불닭볶음면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한국 라면의 역사는 결국 매운맛의 진화라고 봐도 된다. 한국 사람들은 라면을 단순히 면으로만 먹지 않는다. 김치와 먹고, 계란을 풀고, 파를 넣고, 청양고추를 넣고, 콩나물을 넣고, 치즈를 올리고, 떡을 넣고, 만두를 넣고, 마지막엔 밥을 만다. 라면은 완성품이면서 동시에 미완성품이다. 그 자체로도 먹을 수 있지만, 뭘 넣느냐에 따라 계속 다른 음식이 된다. 그래서 라면은 한국인에게 유난히 사랑받는다. 각자 자기만의 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컵라면, 자취방, 편의점, 한강 라면 문화에서 컵라면을 빼놓을 수 없다. 컵라면은 라면을 냄비에서 해방시켰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 학교 매점, 편의점, PC방, 고속도로 휴게소, 군대 PX, 등산 후 정상 근처, 야근 중 사무실. 컵라면은 한국인의 이동식 부엌이다. 특히 편의점 컵라면 문화는 거의 하나의 장르가 됐다. 컵라면 하나, 삼각김밥 하나, 바나나우유 하나. 이 조합으로 버틴 청춘들이 꽤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한강라면도 빼놓을 수 없다. 편의점에서 은박 용기를 꺼내 즉석 조리기에 올려놓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이 서서히 풀린다. 바람은 살짝 차고, 강 건너 불빛은 반짝이고, 돗자리 위에서는 누군가 웃고 있다. 사실 맛만 놓고 보면 집에서 끓인 라면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강의 공기와 야경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라면은 장소를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집에서 먹는 라면, 편의점에서 먹는 라면, 산에서 먹는 라면, 바닷가에서 먹는 라면, 술 마신 다음 날 먹는 라면은 전부 다른 음식이다. 같은 봉지라도 상황이 바뀌면 맛이 바뀐다. 라면은 그래서 오래 살아남았다. 라면은 건강에 나쁠까 라면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라면, 몸에 안 좋은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라면은 완벽한 건강식은 아니다. 나트륨이 많고, 튀긴 면은 지방도 있다. 국물까지 전부 마시면 염분 섭취가 꽤 높아질 수 있다. 늦은 밤에 먹고 바로 자면 다음 날 얼굴이 붓는 것도 괜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라면을 무조건 독극물처럼 볼 필요도 없다. 라면 한 봉지의 열량은 대략 400~500kcal 정도다. 라면 하나만 먹으면 오히려 한 끼 식사로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에 밥을 말고, 김치를 많이 먹고, 국물을 다 마시고, 야식으로 자주 먹을 때다. 라면을 조금 더 건강하게 먹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스프를 조금 덜 넣고, 국물을 다 마시지 않고, 계란이나 두부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파·콩나물·버섯 같은 채소를 넣고, 가능하면 너무 늦은 시간에는 자주 먹지 않는 것. 맛은 조금 양보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라면을 오래 사랑하려면 이 정도 타협은 필요하다. 요즘 라면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대부분 튀긴 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건면, 저염 제품, 비건 라면, 프리미엄 라면, 지역 맛을 살린 라면까지 종류가 다양해졌다. 라면은 여전히 인스턴트 음식이지만, 더 이상 “싸고 빠른 음식”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우지파동, 라면이 겪은 가장 큰 상처 한국 라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1989년의 우지파동이다. 당시 일부 라면업체가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라면업계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긴 법적 공방과 안전성 논란이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업체들이 승소하며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이미 소비자들의 인식에는 큰 상처가 남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식품 논란이 아니었다. 라면은 국민 음식이었다. 서민들이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었다. 그만큼 신뢰가 흔들렸을 때 충격도 컸다. 하지만 라면은 살아남았다. 제조 방식은 바뀌었고, 업체들은 더 신중해졌고, 소비자들의 눈도 더 까다로워졌다. 그리고 라면은 다시 한국인의 식탁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라면의 생명력은 참 라면답다. 한 번 눌리고 식어도, 뜨거운 물을 만나면 다시 살아난다. 한국 라면은 이제 세계가 먹는다 예전의 라면은 한국 안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신라면은 오래전부터 한국 매운맛의 대표 선수였고, 불닭볶음면은 유튜브 챌린지와 K-콘텐츠 열풍을 타고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됐다. 해외 마트에 가면 한국 라면 코너가 따로 있는 곳도 많아졌다.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이 냄비째 라면을 먹는 장면은 외국인에게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라면은 이제 K-푸드의 중요한 축이다. 김치, 불고기, 비빔밥처럼 전통 음식은 아니지만, 오히려 현대 한국인의 생활을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일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빠른 일상, 야근 문화, 편의점 문화, 매운맛 취향, 혼밥 문화, 가성비 감각이 라면 한 봉지 안에 들어 있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 라면을 만들었다. 이제는 세계가 한국 라면을 사 간다. 역사가 이렇게 돌아왔다. 라면은 왜 소울푸드인가 라면이 소울푸드인 이유는 고급스러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너무 평범해서다. 라면은 대단한 요리가 아니다. 냄비 하나, 물, 봉지 하나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을 위로한다. 돈 없던 자취방에서 먹던 라면. 친구들과 밤새 놀고 끓여 먹던 라면. 엄마 몰래 야식으로 끓여 먹던 라면. 비 오는 날 창문 열어놓고 먹던 라면. 아픈 날 입맛 없는데도 겨우 먹던 라면. 월급 전날 버티게 해준 라면. 라면은 늘 화려한 날보다 애매한 날에 더 가까이 있었다. 뭔가 부족한 날, 조금 외로운 날, 지갑이 가벼운 날, 몸이 피곤한 날. 그래서 라면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빈틈을 채워주는 음식이다. 결정적으로 라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비싼 레스토랑 예약도 필요 없고, 조리 기술도 필요 없다. 대학생도, 직장인도, 군인도, 아빠도, 엄마도, 혼자 사는 사람도, 야근하는 사람도 똑같은 냄비 앞에 선다. 물이 끓고, 스프를 넣고, 면을 넣고, 3~4분을 기다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은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사실 라면은 배고픔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는 모두가 가난했다. 값싸게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필요했다. 물론 초기의 그러한 라면 조차도 먹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라면은 한국인의 추억, 취향, 야식, 해장, 자취, 캠핑, 편의점, 한강, 세계화까지 모두 품은 음식이 됐다. 라면은 완벽한 음식은 아니다. 나트륨도 많고, 자주 먹으면 건강 걱정도 된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더 사람 같다. 가끔은 대충 끓여도 맛있고, 가끔은 계란 하나로 사치가 되고, 가끔은 찬밥 한 덩이로 한 끼가 완성된다. 그리고 어느 밤, 문득 배가 출출해질 때 우리는 또다시 부엌으로 간다. 냄비를 꺼내고, 물을 붓고, 봉지를 뜯는다. 라면은 그렇게 오늘도 끓는다. 후루룩. 짭짭. 별것 아닌데, 이상하게 맛있는 음식. 가난한 한 끼였고, 청춘의 야식이었고, 이제는 세계가 먹는 K-푸드가 된 음식. 라면은 한국인의 가장 뜨거운 소울푸드다.
2026.05.04
5
6
대한민국 아빠차, 기아 카니발 이야기 어쩌다 고속도로 위의 과학이 되었나 대한민국에서 “아빠차”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가 있다. 제네시스? 팰리세이드? 쏘렌토?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원조급 아빠차를 꼽으라면 결국 이 차를 빼기 어렵다. 기아 카니발. 카니발은 참 묘한 차다. 누군가에게는 아이 셋 키우는 집의 구원투수이고, 누군가에게는 캠핑 장비를 실어 나르는 이동식 창고다. 또 누군가에게는 부모님 병원 모시고 가는 효도차이고, 누군가에게는 연예인·기업 의전용으로 쓰이는 움직이는 대기실이다. 한 차가 이렇게 여러 얼굴을 갖는 경우도 드물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카니발이 단순히 “좋은 패밀리카”로만 기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을 위해 태어난 차인데, 어느 순간 고속도로와 커뮤니티에서 욕도 꽤 먹는 차가 됐다. 아빠들의 현실 드림카이자, 도로 위 여론의 샌드백. 그게 지금 카니발의 이상한 위치다. IMF 시절에 등장한 가족용 드림카 카니발의 시작은 1998년이다. 시점이 꽤 상징적이다. 대한민국이 IMF 외환위기를 지나던 시절이었다. 금 모으기 운동, 구조조정, 실직, 맞벌이, 가족 부양의 압박이 한꺼번에 몰려오던 때였다. 그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지금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무게를 짊어지고 살았다. 낮에는 회사, 밤에는 부업, 주말에는 가족 챙기기. 자기 취미나 여유보다 가족이 먼저였던 시대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카니발은 단순한 신차가 아니었다. 승합차처럼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는데, 스타렉스처럼 일하는 차 느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단보다 넓고, SUV보다 실용적이고, 승합차보다 승용차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 한국 가족 구조에 너무 잘 맞았다.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태우고, 명절에 이동하고, 주말에 근교 나들이 가고, 트렁크에 유모차와 장바구니와 아이들 짐을 때려 넣는 차. 카니발은 그 모든 상황에 꽤 현실적인 답이었다. 이름도 절묘했다. 카니발, 즉 축제. 엄청나게 빠른 차도 아니고, 폼 나는 스포츠카도 아니지만, 가족이 함께 이동하는 순간만큼은 그 자체가 작은 축제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카니발은 자동차라기보다 “가족 행사 장비”에 가까웠다. 어쩌다 카니발은 아빠차가 됐나 카니발이 국민 아빠차가 된 이유는 감성보다 현실에 가깝다. 첫째, 공간이다. 아이 하나일 때는 세단도 괜찮다. 아이 둘까지는 SUV로도 버틴다. 그런데 아이 셋이 되거나, 부모님까지 함께 타거나, 카시트와 유모차와 여행 짐이 동시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터 차는 디자인보다 공간이 먼저다. 그 순간 카니발은 잔인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둘째, 슬라이딩 도어다. 이건 아이 키우는 집에서는 거의 치트키다. 좁은 주차장에서 아이가 문을 확 열어 옆 차를 찍을 걱정이 줄어든다. 아이를 안고 태우기도 편하다. 어르신들이 오르내리기도 쉽다. 일반 SUV의 여닫이문과 비교하면 생활 체감이 확실히 크다. 옵션표에서는 그저 전동 슬라이딩 도어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평화 유지 장치에 가깝다. 셋째, 9인승의 특권이다. 카니발 9인승은 조건만 맞으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다. 정확히는 9인승 이상 차량에 6명 이상이 탑승해야 한다. 그러니까 7인승 카니발은 6명이 타도 안 되고, 9인승이라도 5명만 타면 안 된다. 이 조건은 카니발의 이미지를 크게 키웠다. 명절 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이 꽉 막혀 있는데, 우리 가족은 합법적으로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다? 아이 셋 있는 집 입장에서는 이보다 현실적인 유혹이 없다. 넷째,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한국 시장에서 카니발과 정면으로 붙을 만한 국산 미니밴은 사실상 많지 않았다. 스타렉스나 스타리아는 상용차 이미지가 강했고, 수입 미니밴은 가격과 유지비에서 부담이 있었다. 결국 패밀리카를 고민하던 사람들은 돌고 돌아 같은 결론에 도착했다. “그냥 카니발 가자.” 이건 자동차의 우월함이라기보다 포지션의 승리다. 카니발은 잘 만든 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빈자리를 너무 잘 차지한 차였다. 세대가 바뀌며 아빠차에서 현실 드림카로 초기 카니발은 실용차 이미지가 강했다. 크고, 넓고, 사람 많이 태우는 차. 그 정도였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카니발은 점점 고급스러워졌다. 2세대 그랜드 카니발을 거치며 차체는 더 커졌고, 3세대 올 뉴 카니발부터는 디자인이 확 달라졌다. 이전의 둥글고 생활형 미니밴 느낌에서 벗어나 더 당당하고 세련된 패밀리카가 됐다. 이 시기부터 카니발은 단순히 “어쩔 수 없이 사는 차”가 아니라 “아빠들이 은근히 갖고 싶어 하는 차”가 됐다. 아이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막상 옵션표를 보면 아빠가 더 신난다. 어라운드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전동 슬라이딩 도어, 프리미엄 사운드, 릴렉션 시트, 하이리무진. 가족을 핑계로 살 수 있는 합법적 대형 장난감이 된 것이다. 특히 하이리무진은 카니발의 이미지를 한 단계 더 밀어 올렸다. 연예인 밴, 기업 의전차, 골프장 이동차, 장거리 출장용 차량으로 쓰이면서 “카니발 = 가족차”에 “카니발 = 이동식 VIP룸”이라는 이미지까지 붙었다. 이쯤 되면 카니발은 그냥 미니밴이 아니다. 대한민국식 생활형 럭셔리다. 카니발 하이브리드, 마지막 약점을 건드리다 카니발의 오랜 약점은 연비와 소음이었다. 덩치가 크고 무거우니 연비가 좋기 어렵고, 디젤 모델은 특유의 진동과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족차로는 좋은데, 도심 주행이 많으면 기름값과 정숙성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모델의 등장은 꽤 큰 사건이었다. 1.6 터보 하이브리드는 카니발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도심 주행에서 연비 부담을 줄이고, 디젤 특유의 소음과 진동에서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아이 등하원, 출퇴근, 주말 나들이를 모두 한 차로 해결해야 하는 집이라면 하이브리드의 매력은 꽤 크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덩치 생각하면 연비는 제법 잘 나오는 편이지만, 친환경차 세제 혜택 기준에는 아슬아슬하게 못 미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말이 많았다. 좋긴 좋은데, 딱 한 끗이 모자란 느낌. 이 부분도 참 카니발답다. 그래도 시장의 반응은 확실했다. 카니발 하이브리드는 기존 카니발의 가장 현실적인 단점을 보완한 모델이다. 조용하고, 넓고, 기름 덜 먹는 아빠차. 이 조합은 한국 시장에서 안 팔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카니발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차가 됐다. 패밀리카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다들 하는 말. “이럴 거면 그냥 카니발이지.” 하지만 카니발의 그림자도 짙어졌다 카니발은 가족을 위해 태어난 차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로 위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도 갖게 됐다. 큰 차체로 바짝 붙는 운전, 방향지시등 없이 밀고 들어오는 차선 변경, 버스전용차로 얌체 주행, 과한 튜닝,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주행 습관. 이런 장면들이 쌓이면서 일부 카니발 운전자는 커뮤니티에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 물론 카니발 차주 전체의 문제는 아니다. 차가 많이 팔리면 좋은 운전자도 많고, 이상한 운전자도 많다. 도로에 많이 보이는 차일수록 나쁜 사례도 더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카니발은 덩치가 크다. 큰 차가 난폭하게 움직이면 위협감이 훨씬 크다. 같은 끼어들기라도 작은 차가 하면 “왜 저러지” 정도인데, 카니발이 하면 “밀고 들어오네”가 된다. 여기에 버스전용차로 이슈가 더해졌다. 규정대로 9인승 이상 차량에 6명 이상이 타면 합법이다. 하지만 혼자 타거나 인원이 부족한데도 전용차로를 타는 얌체 사례가 생기면서 이미지가 나빠졌다. 카니발은 원래 가족을 편하게 태우라고 만든 차다. 그런데 그 넓은 차체와 혜택이 일부 운전자에게는 도로 위 권력처럼 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불쾌해한다. 스포츠카가 시끄러우면 “원래 저런 차인가 보다” 하고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카니발이 난폭하게 움직이면 반응이 다르다. “애들 태우고 저러나?” 이 한마디가 카니발의 불명예를 설명한다. 차는 죄가 없다, 문제는 운전대다 사실 차가 무슨 죄가 있겠나. 카니발 자체는 한국 시장에 정말 잘 맞는 차다. 공간, 실용성, 옵션, 가격 경쟁력, 유지 접근성까지 생각하면 이만한 패밀리카가 흔치 않다. 문제는 운전대 잡은 사람이다. 카니발이 나쁜 차가 된 게 아니라, 일부 운전자가 카니발의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었다. 가족을 위해 만든 넓은 실내가 때로는 과시용 덩치가 되고, 합법적으로 쓰라고 준 버스전용차로 혜택이 얌체 운전의 핑계가 되고, 편하게 타라고 만든 큰 차체가 도로 위 압박감으로 쓰일 때가 있다. 일부 운전자가 만든 난폭운전 이미지, 버스전용차로 얌체 논란, 거대한 차체에서 오는 위압감은 이제 카니발이 감당해야 할 그림자가 됐다. 그래서 카니발은 억울한 차다. 좋은 아빠 만나면 최고의 가족차고, 이상한 아빠 만나면 고속도로 빌런이 된다. 그래도 카니발은 계속 팔릴 것이다 욕을 먹어도 카니발은 팔린다. 왜냐하면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아이 셋 있는 집에 “그냥 세단 타세요”라고 할 수 없다. 부모님 모시고 다니는 집에 “작은 SUV도 충분해요”라고 말하기 어렵다. 캠핑 짐, 유모차, 카시트, 장거리 여행, 명절 이동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카니발은 허세가 아니라 필요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지금의 카니발은 예전처럼 투박한 미니밴이 아니다. 디자인은 SUV처럼 단단해졌고, 실내는 훨씬 고급스러워졌고, 하이브리드까지 들어오며 약점도 줄었다. 7인승은 편하고, 9인승은 실속 있고, 하이리무진은 의전까지 가능하다. 한 차종 안에 너무 많은 욕망을 담고 있다. 가족차, 캠핑차, 회사차, 의전차, 장거리차, 버스전용차로 욕망까지. 이 정도면 차라기보다 대한민국 생활 양식의 압축판이다. 아빠의 자부심이자, 아빠의 숙제 카니발은 대한민국 아빠들의 현실을 많이 닮았다. 멋있고 싶지만 실용적이어야 하고, 혼자 타고 싶지만 가족을 태워야 하고, 빠르게 가고 싶지만 안전해야 하고, 가끔은 폼도 잡고 싶지만 결국 짐을 실어야 한다. 즉, 좋은 아빠가 타면 대한민국 최고의 가족차. 이상한 아빠가 타면 도로 위 거대한 민폐 상자. 6명 태우고 규정 지키면 버스전용차로의 합법적 승자. 혼자 타고 밀고 들어가면 그냥 움직이는 민폐 덩어리. 그래도 어쩌겠나. 아이 셋, 유모차 하나, 카시트 두 개, 캠핑 박스 세 개, 장모님까지 모셔야 하는 순간이 오면 사람은 결국 현실과 타협한다. 그리고 그 현실의 끝에는 대체로 이 차가 서 있다. 기아 카니발. 대한민국 아빠의 공간이자, 고속도로 여론의 샌드백이며, 좋게 타면 가족의 안식처, 나쁘게 타면 욕먹기 딱 좋은 덩치 큰 미니밴. 웃기지만, 이만큼 한국적인 차도 드물다.
2026.05.04
8
6
레인지로버, 진흙탕에서 태어나 호텔 정문으로 간 SUV SUV라는 단어가 이제는 너무 흔해졌다. 요즘은 마트 주차장만 가도 SUV가 넘친다. 소형 SUV, 쿠페형 SUV, 전기 SUV, 패밀리 SUV, 럭셔리 SUV까지 종류도 끝이 없다. 그런데 이 많은 SUV들 사이에서도 유독 따로 노는 차가 하나 있다. 레인지로버. 그냥 비싼 SUV라기보다, 어딘가 이상한 위치에 있다. 오프로드를 잘 달리는 차인데 실내는 고급 세단처럼 꾸며져 있고, 산길을 올라갈 수 있는 차인데 호텔 발렛존에 세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진흙탕을 빠져나온 뒤 그대로 고급 리조트 입구에 서도 품위가 죽지 않는 차. 레인지로버의 정체성은 딱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작업복을 입은 귀족 같은 차다. 시작은 럭셔리가 아니라 ‘불편함에 대한 반항’이었다 레인지로버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조용하고, 넓고, 비싸고, 의전차 같은 SUV였던 것은 아니다. 레인지로버가 등장하기 전 랜드로버의 대표 모델들은 지금의 디펜더 조상쯤 되는 차들이다. 농장, 군대, 공사 현장, 험지에서 쓰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다. 튼튼하고 잘 달렸지만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내는 투박했고, 승차감은 단단했고, 정숙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이 되면서 자동차를 쓰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가 늘고, 장거리 이동이 많아지고, 여가와 레저 문화가 커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험지만 잘 가는 차”만 원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편하게 타고, 멀리 갈 때는 안정적이고, 필요하면 산길과 진흙길도 가는 차. 당시 기준으로는 꽤 욕심 많은 요구였다. 고급 세단은 편했지만 험지를 못 갔고, 오프로더는 험지를 잘 갔지만 일상에서는 불편했다. 이 둘을 한 차에 넣겠다는 발상은 지금 보면 당연해 보여도, 당시에는 꽤나 대담한 생각이었다. 레인지로버 개발을 이끈 인물로 알려진 찰스 스펜서 킹의 질문도 여기서 출발한다. “왜 오프로드 차량은 꼭 불편해야 하지?” 그 질문 하나가 훗날 럭셔리 SUV라는 장르의 씨앗이 됐다. 비밀 프로젝트 ‘벨라’, 그리고 1970년의 등장 초기 개발은 조용히 진행됐다. 프로토타입에는 ‘레인지로버’라는 이름도 붙지 않았다. 대신 벨라(Velar)라는 이름을 썼다. ‘숨기다’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레인지로버 벨라라는 모델명으로 다시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정체를 감추기 위한 암호명에 가까웠다. 그리고 1970년, 마침내 1세대 레인지로버가 등장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실내가 고급스럽다기보다 실용적이다. 바닥은 고무 매트였고, 물청소가 가능할 정도로 막 쓰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오프로더 기준으로는 굉장히 진보적이었다. 리프 스프링 대신 코일 스프링을 적용해 승차감을 개선했고, 풀타임 4륜구동으로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고려했다. 여기에 V8 엔진까지 얹어 고속 주행 능력도 챙겼다. 즉, 레인지로버는 처음부터 “비싼 차”가 아니라 험지를 달릴 수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탈 만한 차로 출발했다. 그런데 세상은 이 차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편하고, 크고, 당당하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차. 상류층과 레저 문화가 이 차를 그냥 두지 않았다. 농장과 산길을 위한 실용적인 차는 점점 귀족의 별장, 사냥터, 리조트, 도심 고급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레인지로버는 단순한 오프로더가 아니라, 험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고급 이동 수단으로 이미지가 바뀌어 갔다. 세대를 거치며 ‘왕좌’가 만들어지다 1세대 레인지로버는 무려 26년 가까이 판매됐다. 처음에는 2도어로 시작했지만, 1981년에는 4도어 모델이 등장했고, 1982년에는 자동변속기가 추가됐다. 1986년에는 디젤 엔진 모델도 나왔다. 한 세대 안에서 계속 변신하며 시장을 넓혀간 셈이다. 1994년에 등장한 2세대 P38A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레인지로버의 인상을 훨씬 뚜렷하게 만들었다. 플로팅 루프, 클램쉘 보닛, 수평적인 차체 라인, 스플릿 테일게이트 같은 요소들이 이 시기부터 브랜드의 얼굴이 됐다. 실내도 더 고급스러워졌고,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으로 오프로드와 온로드 양쪽에서 더 편안한 주행을 노렸다. 2001년 등장한 3세대 L322는 레인지로버가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럭셔리 SUV에 가까워진 시기다. 차체 구조는 더 단단해졌고, 독립식 에어 서스펜션과 지형 반응 시스템 같은 기술이 들어가면서 “험지에 강한 고급차”라는 콘셉트가 더 정교해졌다. 실내는 요트, 고급 가구, 퍼스트 클래스 좌석 같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왔다. 이제 레인지로버는 단순히 좋은 SUV가 아니라, SUV 형태를 한 응접실에 가까워졌다. 2012년에 나온 4세대 L405는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았다. 알루미늄 바디 구조를 적용하면서 무게를 크게 줄였고, 승차감과 정숙성은 한층 더 좋아졌다. 밖에서는 거대한 SUV인데, 안에서는 고요한 라운지처럼 느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5세대 L460에 오면 레인지로버는 더 미니멀해진다. 선을 줄이고, 장식을 덜어내고, 차체를 매끈하게 다듬었다. 예전의 레인지로버가 “나 비싼 차야”라고 어느 정도 말하는 차였다면, 최신 세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에 가깝다. 퍼팅라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제된 디자인은 호불호를 떠나 확실히 존재감이 있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레인지로버를 두고 흔히 사막의 롤스로이스라고 부른다. 표현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차의 성격을 생각하면 꽤 잘 맞는 별명이다. 험지를 갈 수 있는 차는 많다. 편한 차도 많다. 비싼 차도 많다. 하지만 험지를 갈 수 있으면서, 그 안에서 운전자를 귀빈처럼 대접하고, 도심 고급 호텔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 차는 많지 않다. 레인지로버의 진짜 매력은 분위기에 있다. 높은 시야, 묵직한 차체, 두꺼운 문, 고요한 실내, 푹신한 에어 서스펜션, 광활한 2열 공간. 특히 롱휠베이스 모델의 뒷좌석은 그냥 좌석이라기보다 작은 방에 가깝다. 실제 시승기에서도 5세대 P530 LWB는 최고급 세단 못지않은 안락함과 고요한 실내, 530마력의 성능을 갖춘 럭셔리 SUV로 평가된다. 이 차를 타면 이상한 여유가 생긴다. 급하게 달리기보다 천천히 운전하게 된다. 빠른 차라기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차처럼. 물론 실제 구매자 중 진흙탕에 집어넣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백화점, 골프장, 고급 아파트 주차장, 호텔, 공항 의전차량으로 더 많이 쓰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갈 수 있느냐”다. 레인지로버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차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다만 굳이 안 갈 뿐이다.” 이 묘한 오만함이 바로 레인지로버의 매력이다. 럭셔리 SUV 시장을 만든 원조의 무게 요즘은 벤틀리 벤테이가, 롤스로이스 컬리넌,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BMW XM 같은 초고가 SUV들이 시장에 잔뜩 들어와 있다. 이제 럭셔리 SUV는 더 이상 레인지로버 혼자만의 놀이터가 아니다. 그럼에도 레인지로버가 특별한 이유는, 이 장르를 오래전부터 파고들어 온 원조의 감각 때문이다. 경쟁자들은 대체로 고급 세단의 세계에서 SUV로 내려왔다. 반면 레인지로버는 진흙탕에서 출발해 고급 호텔로 올라왔다. 출신 성분이 다르다. 그래서 레인지로버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그냥 커다란 고급차가 아니라, 원래부터 길이 없는 곳을 가던 차가 점점 귀족화된 느낌이다. 벤틀리와 롤스로이스가 “우리도 SUV 만들 수 있어”라고 말한다면, 레인지로버는 “나는 원래 이쪽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게 레인지로버가 가진 브랜드의 힘이다. 차를 잘 만들어서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서사가 차체 위에 같이 올라타 있다. 여기까지 보면 레인지로버는 거의 완벽한 차처럼 느껴진다. 품위 있고, 조용하고, 넓고, 잘 달리고, 험지도 간다. 운전자는 귀족이 된 것 같고, 동승자는 호텔 라운지에 앉은 것 같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이야기를 하면서 이 대목을 빼면 반칙이다. 문제는 고장이다. 레인지로버는 오래전부터 극악의 고장률로 악명이 높다.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까지 나온다. “레인지로버는 두 대를 사야 한다. 하나는 타고, 하나는 서비스센터에 넣어두려고.” 물론 모든 차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관리 잘하고, 뽑기 잘하고, 보증 기간 안에서 타면 천상의 이동수단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보증이 끝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자장비, 에어 서스펜션, 냉각 계통, 각종 센서, 잡소리, 경고등. 고급스러운 실내 조명보다 먼저 계기판 경고등이 주인을 반겨주는 경우도 있다. 레인지로버는 누군가에게는 인생 최고의 차다. 한 번 타면 다른 SUV가 심심해지는 차다. 높은 시야와 고요한 실내, 그 말도 안 되는 품위 때문에 계속 생각나는 차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만드는 차다. 차는 분명 천국 같은데, 같은 증세로 서비스센터 예약을 두번 하고나면 필시 또 고장나게 된다. 그래서 레인지로버는 참 이상한 차다. 타는 순간에는 “역시 이 급은 다르다” 싶다가도, 고장이 나면 “역시 이 브랜드는 다르다”는 말이 다른 의미로 나온다. 1억이 훌쩍 넘는 고가 SUV인 만큼 대다수 사람에게는 그저 남이 타는 고급차일 뿐이다. 도로에서 보면 멋있고, 주차장에 세워져 있으면 존재감 있고, 기사로 보면 갖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 내 통장에서 수리비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그 낭만은 꽤 빠르게 증발할 수 있다. 결국 레인지로버는 가질 수 있으면 부럽고, 유지할 수 있으면 대단하고, 보증 끝나도 사랑할 수 있으면 진짜 주인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 레인지로버는 그냥 멀리서 볼 때 가장 아름다운 SUV일지도 모른다. 마치 영국 귀족처럼 우아하게 손을 흔들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조용히 청구서를 내미는 자동차. 천상의 승차감과 지옥의 정비비를 동시에 품은 차. 그게 바로 레인지로버의 가장 솔직한 얼굴이다. “ 커뮤니티 빌런 18+ 에서만 볼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 레인지로버 편”
2026.05.04
5
5
한미마이크로닉스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시 금천구에 위치한 아동복지시설 ‘혜명메이빌’을 방문해 후원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이번에 전달된 후원금은 아동의 성장과 복지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에 사용될 예정이다. 혜명메이빌은 1946년 개원한 아동 양육시설로, 현재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약 49명의 아동이 생활하고 있다. 마이크로닉스와 혜명메이빌의 인연은 2020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IT 커뮤니티 회원들과 함께 기부금을 마련해 첫 후원을 진행한 이후, 매년 꾸준한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후원금 전달과 함께 봉사활동도 진행됐다. 마이크로닉스 임직원들은 시설 외부 공간을 정비하고 미관 개선을 위한 꽃 심기 작업을 진행하며 생활 환경 개선에 힘을 보탰다. 마이크로닉스 박정수 사장은 “작은 정성이지만 아동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마이크로닉스는 아동복지 향상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2015년부터 글로벌 아동권리 NGO ‘굿네이버스’와 협력해 ‘굿바이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사 제품 판매와 연계한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6.05.04
1
1
서린씨앤아이가 프랙탈디자인(Fractal Design)의 팝2 비전(POP 2 VISION) 시리즈 PC 케이스 신제품 3종을 정식 출시했다. 이번 신제품은 전면과 측면 패널에 시야의 경계를 허무는 심리스 파노라마 글라스를 적용하여 시스템 내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뛰어난 개방감을 제공한다. 모델은 기본형인 팝 2 비전 블랙을 비롯해 튜닝 효과를 더한 팝 2 비전 블랙 RGB, 팝 2 비전 화이트 RGB 등 총 3가지 색상과 규격으로 구성되었다. 팝 2 비전 시리즈는 최신 조립 트렌드에 맞춰 ATX 및 mATX 폼팩터 기반의 후면 커넥터 메인보드를 완벽하게 지원한다. 선 정리를 위한 공간에 벨크로 스트랩과 케이블 타이 포인트를 제공해 메인보드 표면에 노출되는 선을 최소화하고 깔끔한 시스템 연출을 돕는다. 저장장치는 전용 브래킷을 통해 2.5인치 SSD 3개와 3.5인치 또는 2.5인치 겸용 드라이브 1개를 장착할 수 있어 총 4개의 스토리지 구성이 가능하다. 시스템 확장성 측면에서 최대 172mm 높이의 CPU 쿨러와 최대 412mm 길이의 고성능 그래픽카드 장착을 지원해 대규모 하드웨어 구성을 위한 헤드룸을 확보했다. 상단에는 최대 360mm 또는 280mm 규격의 라디에이터를 장착할 수 있으며 후면에는 120mm 규격의 라디에이터 설치가 가능하다. 파워서플라이는 최대 190mm 길이 제품까지 호환된다. 상단 I/O 포트에는 10Gbps 전송 속도를 지원하는 USB Type-C 포트 1개와 USB 3.0 포트 2개, 오디오 및 마이크 단자를 배치해 사용자의 기기 연결 편의성을 높였다. 쿨링 솔루션으로는 우측면에 2개, 후면에 1개의 120mm 쿨링팬을 기본 제공하여 공기 흐름을 최적화했다. 기본 모델인 블랙 색상에는 애스펙트 12X 리버스 팬이 탑재되었으며 블랙 RGB 및 화이트 RGB 모델에는 주소지정형 RGB 조명을 지원하는 애스펙트 12X RGB 리버스 팬이 탑재되어 시스템 튜닝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제공되는 팬은 모두 허브와 지지대 구조가 보이지 않는 리버스 블레이드 디자인을 채택하여 파노라마 글라스 특유의 깔끔한 외관을 돋보이게 한다. 측면과 상단 및 하단 패널 곳곳에는 반영구적인 매시 필터를 적용해 먼지 유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쿨링 효율을 유지한다.
2026.05.04
0
1
에이서(Acer)의 자회사인 알토스 컴퓨팅(Altos Computing Inc.)이 오는 2026년 5월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코엑스(COEX) 1층 A홀에서 열리는 'AI EXPO KOREA 2026(국제인공지능대전)'에 참가한다. 알토스 컴퓨팅(이하 알토스)는 글로벌 고성능 컴퓨팅(HPC) 및 AI 인프라 솔루션 기업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시장에 처음 선보인다. 알토스는 “AI 인프라와 비즈니스 현실의 간극을 잇다 (Bridging the Gap Between AI Infrastructure & Business Reality)”를 주제로, 기업이 AI 도입 과정에서 직면하는 기술적·운영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통합 AI 인프라 및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이번 AI EXPO KOREA 2026 참가를 계기로 에이서 코리아는 알토스를 2026년 3분기부터 국내에 정식 출시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국내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AI 인프라 및 HPC 기반 솔루션 사업을 본격 확대할 예정이다. 알토스는 이번 전시에서 단순한 AI 모델 구축 단계를 넘어, 실제 비즈니스 환경에서 AI를 대규모로 확장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통합 인프라 구축 및 운영 자동화 기술 역량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재키 리(Jackie Lee) 알토스 대표는 “AI EXPO KOREA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AI 산업 행사 중 하나로, 알토스가 한국 AI 생태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알토스는 통합 AI 인프라와 지능형 오케스트레이션 기술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AI를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한국 시장에서의 AI 혁신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토스 부스(G13)에서는 모델 훈련부터 엣지(Edge) 환경 구현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라이브 데모가 진행되며, 다양한 AI 인프라 및 솔루션 라인업이 함께 소개된다. ‘Altos BrainSphere R880 F7’은 대규모 모델 학습, 생성형 AI 및 고성능 컴퓨팅(HPC) 워크로드를 위해 설계된 알토스의 플래그십 AI 서버로, 8개의 NVIDIA HGX Blackwell GPU를 탑재해 초고밀도 AI 연산 성능을 제공한다. ‘Altos BrainSphere R680 F7’은 기업 환경에 최적화된 AI 서버 플랫폼으로, 개발부터 프로덕션까지 다양한 AI 워크로드를 효율적으로 지원하며 최대 8개의 NVIDIA RTX™ 6000 Blackwell Server Edition 또는 NVIDIA H200 NVL GPU를 지원한다. ‘Altos BrainSphere R380 F7’은 엣지 환경에 적합한 콤팩트 서버로, 공간 제약 환경에서도 효율적인 AI 추론 성능을 제공하며 듀얼 Intel® Xeon® 6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성능을 제공한다. ‘Altos aiWorks 5.0’은 지능형 리소스 오케스트레이션, GPU 스케줄링 및 중앙 집중식 클러스터 관리를 통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인프라 비용을 최적화하는 기업용 AI 관리 및 배포 플랫폼이다. ‘Altos BrainSphere GB10 F1’과 ‘Altos aiGeni’는 기업 에이전틱 AI 도입 시나리오를 시연하기 위한 AI 워크스테이션 및 솔루션으로, NVIDIA OpenShell 기반으로 실행되며 NVIDIA NemoClaw와 통합되어 통제된 환경에서 OpenClaw와 같은 상시 AI 어시스턴트 배포를 가능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알토스는 AI 인프라부터 에이전틱 AI 에이전트까지 연결되는 통합 워크플로우를 통해, 데이터 보안과 거버넌스를 고려한 엔터프라이즈 환경의 실질적인 AI 활용 전략을 제시한다. 고성능 컴퓨팅(HPC) 기반 인프라와 AI 관리 소프트웨어, 에이전틱 AI 기술을 결합한 통합 플랫폼을 통해 기업의 AI 도입 장벽을 낮추고, AI 투자를 실제 업무 환경에서 활용 가능한 확장형 AI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acer
2026.05.04
0
1
선정의 아이콘 후터스, 30년 만에 폐점 닭날개보다 먼저 식어버린 건, 1990년대식 성공 공식이었다 후터스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참 애매하다. 치킨 윙을 파는 스포츠 펍인가? 맥주를 파는 패밀리 레스토랑인가? 아니면 노출 있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브랜드의 절반을 차지하는 쇼 비즈니스인가? 정답은 셋 다였다. 그래서 한때는 잘됐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은 낡아 보인다. 결국 싱가포르 클락키의 후터스가 2026년 1월 31일 문을 닫았다. 1996년 문을 연 매장은 북미 밖 첫 후터스 프랜차이즈이자 아시아 1호점으로 알려졌고, 30년 가까이 싱가포르 강변 상권의 상징처럼 버텼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바구니의 윙을 튀기고 간판을 내렸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후터스를 몰라서 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들 알았다. 다들 한 번쯤 가봤거나, 최소한 “거기 뭔지는 알지” 하는 브랜드였다. 문제는 ‘알고는 있지만 굳이 자주 가지 않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가족여행 중 먹은 윙 한 접시가 아시아 1호점을 만들다 싱가포르 후터스의 시작은 꽤 영화 같다. 1995년, 싱가포르 사업가 C.S. Chua가 가족과 미국 여행을 갔다가 후터스를 방문했다. 딸 셀레나 추아의 회고에 따르면, 가족은 그냥 치킨 윙을 먹으러 들어갔을 뿐인데 어느새 주방 투어까지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끼 식사가 프랜차이즈 계약의 씨앗이 된 셈이다. 1년 뒤인 1996년, 후터스는 싱가포르 클락키에 문을 열었다. 당시 싱가포르 외식 시장에는 지금처럼 캐주얼 스포츠 바가 흔하지 않았다. 격식 있는 식당 아니면 호커센터, 그 중간 어딘가에서 맥주 마시며 경기 보고 윙을 뜯는 공간이 부족했다. 후터스는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미국식 스포츠 바, 치킨 윙, 맥주, 강변 위치, 그리고 후터스 걸이라는 강렬한 컨셉. 처음엔 당연히 반응이 엇갈렸다. “유니폼이 왜 저렇게 짧아?”라는 시선도 있었고, “미국에서 보던 그 분위기네”라며 반가워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미국 주재원, 관광객, 현지인의 호기심이 겹치면서 후터스는 어느새 클락키의 유명한 간판이 됐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확장 분위기도 있었다. 2017년 무렵 싱가포르에는 클락키 외에도 마리나베이, 퓨전오폴리스 쪽 매장이 언급될 정도로 브랜드가 한 번 더 커지는 듯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확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9년 마리나베이와 퓨전오폴리스 매장이 닫히며 싱가포르 후터스는 다시 클락키 한 곳으로 줄어들었다. 진짜 문제는 윙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후터스 폐점 기사들을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가 있다. 인력난. 셀레나 추아는 폐점 이유로 지속적인 인력 부족과 코로나 이후 회복되지 않은 매출을 언급했다. 관광객이 줄고, 늦은 밤 술 판매가 제한되고, 외식업 인건비와 운영비가 올라가면서 매장을 예전처럼 돌리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실 후터스 같은 매장은 일반 식당보다 사람 의존도가 높다. 음식만 나오는 곳이 아니라, 분위기와 응대가 상품의 일부다. 직원 수가 줄면 단순히 서빙 속도만 늦어지는 게 아니다. 브랜드가 팔던 ‘경험’ 자체가 약해진다. 300석짜리 매장을 적은 인원으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후터스 특유의 왁자지껄함도 유지하기 어렵다. 손님은 예전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오지만, 매장은 예전 같은 인력을 구하지 못한다. 그 간극이 쌓이면 “한 번 가볼 만한 곳”은 되어도 “계속 가는 곳”은 되기 어렵다. 게다가 2025년 미국 본사인 Hooters of America도 챕터 11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회사는 3억 7,600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고, 고물가·인건비·식재료비·소비 위축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즉 싱가포르 후터스의 폐점은 한 지점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모델 전체가 늙어가는 흐름 위에 있었다. 문 닫는다니까 손님이 몰린 아이러니 폐점 소식이 알려지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뜸하던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오래된 가게가 문 닫을 때 자주 생기는 현상이다. 평소엔 안 가다가, 없어질 것 같으면 갑자기 아쉬워진다.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습관이 없었을 뿐이다. 후터스도 비슷했다. 많은 사람에게 후터스는 추억은 있지만 루틴은 아닌 공간이었다. “예전에 가봤지”, “한 번쯤은 재밌었지”, “친구랑 장난삼아 갔었지”라는 기억은 남아 있었지만 매주 찾는 단골집은 아니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위험하다. 인지도는 높은데 방문 빈도는 낮은 상태.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오늘 저녁 선택지에는 잘 올리지 않는 상태. 이런 브랜드는 평소엔 멀쩡해 보이다가 외부 충격이 오면 급격히 무너진다. 관광객이 줄거나, 주재원이 빠지거나, 인력난이 오면 버틸 힘이 약하다. 단골 기반이 얇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후터스가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한국 사례다. 후터스는 한국에도 들어온 적이 있다. 2007년 1월, 서울 압구정에 한국 1호점을 열었다. 당시 언론은 후터스를 두고 “선정적이다”,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논란과 함께 소개했고, 실제 현장 반응도 호기심과 민망함이 섞여 있었다. 오마이뉴스와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방문객 사이에서는 “수영장도 가는데 뭐 어떠냐”는 반응부터 “낯 뜨겁다”는 반응까지 갈렸다. 후터스는 미국에서는 노출이 강한 유니폼과 스포츠 바 분위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컨셉을 그대로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간판과 ‘후터스 걸’의 노출 컨셉은 묘하게 충돌했다. 가족 외식 공간이라고 하기엔 민망하고, 주점이라고 하기엔 브랜드가 너무 밝고 미국식이었다. 그래서 한국 후터스는 시작부터 애매한 포지션에 놓였다. 너무 노골적이면 반발을 사고, 너무 순해지면 후터스답지 않았다. 실제로 해외 방문객 리뷰 중에는 서울 후터스를 두고 “미국의 후터스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직원들은 친절했지만 음식은 미국과 다르고 비쌌다”는 식의 평가도 있었다. 트립어드바이저의 서울 후터스 페이지에는 2014년 방문자가 “Not any real hOOters in there”라고 남긴 리뷰도 보인다. 이 한 줄이 한국 후터스의 딜레마를 꽤 잘 보여준다. 한국 정서에 맞추면 후터스 특유의 자극이 약해지고, 미국 원본처럼 가면 사회적 불편함이 커진다. 결국 후터스는 압구정과 강남 등에서 운영됐지만 확장세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2010년 매일경제 보도는 후터스 압구정 1호점이 문을 닫았고, 회사 측이 높은 임대료와 상권 전략을 이유로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기사 역시 한국 진출 초기에 “정서적으로 안 맞는다”, “선정적이다”,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말이 많았다고 짚었다. 이후 신논현·강남권 매장에 대한 방문 리뷰는 남아 있지만, 현재 한국에는 공식 후터스 매장이 없다. 최근 보도에서도 과거 강남·논현 등에 한국 지점이 있었으나 문화적 차이와 수익성 문제로 모두 폐점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후터스가 한국에서 더 어려웠던 이유 한국에서 후터스가 크게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야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식 후터스는 대놓고 밝고 시끄럽고 촌스럽다. 스스로도 “delightfully tacky”, 즉 즐겁게 촌스러운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스포츠 경기, 맥주, 윙, 직원 유니폼, 농담 섞인 응대가 하나의 패키지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면 노출 콘셉트는 논란이 된다. 스포츠 바 문화는 미국만큼 대중적이지 않다. 치킨과 맥주는 이미 한국에 너무 강한 경쟁자가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은 아웃백, TGI프라이데이스 같은 브랜드들과 겹친다. 술집으로 가자니 가격과 분위기가 애매하다. 즉 후터스가 한국에서 팔아야 했던 건 ‘치킨 윙’이 아니라 ‘미국식 장난스러운 남성향 스포츠 바 경험’이었는데, 그 경험이 한국에서는 그대로 복제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국 손님들은 치킨에 까다롭다. 이 나라는 이미 치킨과 맥주의 천국이다. 후터스의 윙이 아무리 유명해도, 한국 소비자에게는 “굳이 여기서 이 가격에?”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한국 후터스는 처음엔 호기심으로 주목받았지만, 그 호기심이 단골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후터스의 진짜 실패는 ‘섹시함’이 아니라 업데이트 실패였다 후터스를 두고 흔히 “시대가 변해서 망했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부족한 설명이다. 시대는 언제나 변한다. 문제는 브랜드가 자기 성공 공식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느냐다. 후터스의 핵심은 오랫동안 ‘후터스 걸’이었다. 하지만 그 컨셉은 동시에 족쇄가 됐다. 바꾸면 후터스가 아니고, 안 바꾸면 낡아 보인다. 이게 바로 원조 브랜드가 자주 빠지는 함정이다. 성공 공식이 강할수록 손대기 어렵다. 손대면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고, 안 손대면 시대와 멀어진다. 미국 본사도 결국 변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파산보호 이후 후터스는 일부 논란이 된 비키니 이벤트를 접고, 더 가족 친화적인 다이닝 모델과 프랜차이즈 중심 구조로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말하자면 후터스는 이제야 “우리가 팔던 게 정확히 무엇이었나”를 다시 묻는 중이다. 윙인가, 맥주인가, 유니폼인가, 추억인가, 스포츠 바인가. 이 질문을 10년만 일찍 했으면 어땠을까. 싱가포르 후터스의 마지막이 그래도 따뜻했던 이유 그나마 싱가포르 후터스의 마지막은 완전히 씁쓸하지만은 않았다. 셀레나 추아는 후터스를 닫은 뒤 새 레스토랑 Beans & Barrels를 준비했고, 기존 직원들을 재고용하는 방향을 택했다. CNA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폐점 이후에도 직원들의 다음 자리를 고민했고, 새 매장은 후터스의 끝이라기보다 전환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이 대목이 꽤 인상적이다. 브랜드는 사라져도 사람은 남는다. 간판은 내려도 주방과 홀에서 일하던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대부분의 폐점 기사는 숫자로 끝난다. 몇 년 운영, 몇 개 매장, 얼마의 부채, 몇 명의 직원. 하지만 실제 가게의 끝은 그런 숫자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마지막으로 소스를 버무리는 사람, 테이블을 닦는 사람, 유니폼을 정리하는 사람, 단골과 사진을 찍는 사람. 그들이 있어야 브랜드의 마지막 장면도 사람이 사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후터스가 남긴 교훈 후터스는 한때 1990년대식 정답이었다. 가볍게 먹고, 크게 웃고, 스포츠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약간은 눈치 보이는 컨셉까지 즐기는 공간. 하지만 1990년대의 정답이 2020년대에도 정답일 수는 없다. 시장은 바뀐다. 고객의 감수성도 바뀐다. 노동시장은 더 빨리 바뀐다. 그리고 외식업은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업종이다. 후터스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인지도는 단골을 이기지 못한다. 화제성은 습관을 이기지 못한다. 원조라는 자부심은 업데이트 없이는 낡은 간판이 된다. 싱가포르 후터스는 30년을 버텼다. 한국 후터스는 호기심을 만들었지만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미국 본사는 파산보호를 거치며 다시 가족 친화적 브랜드를 말하고 있다. 결국 후터스의 역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닭날개가 식어서 끝난 게 아니다. 맥주 거품이 빠져서 끝난 것도 아니다. 문제는 메뉴판 뒤에 붙어 있던 보이지 않는 날짜였다. 1996년. 그 시절에는 맞았던 공식이, 30년 뒤에는 설명이 필요한 콘셉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 커뮤니티 빌런 18+ 에서만 볼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 후터스 편”
2026.05.04
7
7
루이비통 모노그램 130년, 명품 로고 전쟁의 시작 명품 가방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문양이 있다. 갈색 바탕 위에 반복되는 꽃과 별, 그리고 두 글자. L과 V. 지금은 패턴만 봐도 누구나 “루이비통”을 떠올린다. 재미있는 건, 문양이 처음부터 멋을 내려고 만든 디자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출발은 아주 현실적 짝퉁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위조품을 막으려고 만든 패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의 상징이 됐다. 방어용으로 만든 무늬가 어느 순간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목수의 아들, 파리로 향하다 루이비통의 창시자 루이 비통은 1821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어린 루이 비통 역시 자연스럽게 나무를 다루는 일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훗날 그가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 때 보여준 정확한 구조감과 견고함은 어쩌면 이 시절의 경험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고향에 머무르지 않았다. 14세가 되던 해, 루이 비통은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한 시대도 아니었다. 무일푼에 가까운 소년이 먼 길을 걸어 도시로 향했다는 것만으로도 꽤 대담한 선택이었다. 1835년, 그는 마침내 파리에 도착했고, 유명한 트렁크 제작자 무슈 마레샬의 공방에서 견습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단순히 가방을 만드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귀족과 상류층의 여행 짐을 전문적으로 포장하는 일, 즉 ‘패커’의 역할도 함께 익혔다. 요즘으로 치면 고급 여행 컨설턴트이자 수하물 전문가에 가까웠다. 어떤 옷을 어떻게 접어야 하는지, 깨지기 쉬운 물건은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긴 여행을 떠나는 귀족들의 짐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운 것이다. 그의 실력은 점점 입소문을 탔다. 결국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유제니 황후의 눈에 들었고, 궁중에서 일할 기회까지 얻게 된다. 상류사회와 왕실의 여행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경험은 훗날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둥근 트렁크를 납작하게 만든 발상 1854년, 루이 비통은 파리 중심가에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행용 트렁크는 대부분 뚜껑이 둥근 형태였다. 비가 오면 물이 잘 흘러내린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마차나 선박에 여러 개를 쌓기에는 불편했다. 루이 비통은 여기서 발상을 바꿨다. “트렁크 윗부분을 평평하게 만들면 어떨까?” 그의 사각형 트렁크는 쌓기 쉬웠고, 공간 활용이 훨씬 좋았다. 여행이 늘어나던 시대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유럽의 귀족과 부유층은 더 멀리, 더 자주 이동하기 시작했고, 튼튼하면서도 실용적인 트렁크를 원했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는 바로 그 욕망을 정확히 찔렀다. 가볍고, 견고하고, 쌓기 쉬운 트렁크. 그 결과 그의 제품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빠르게 유명해졌다. 문제는 인기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잘 팔리는 물건에는 언제나 따라붙는 것이 있다. 바로 모조품이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가 인기를 끌자 곧바로 비슷한 제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명품 브랜드들이 위조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처럼, 루이비통 역시 시작부터 짝퉁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줄무늬도 베끼고, 체크무늬도 베꼈다 루이 비통은 위조품을 막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1870년대에는 베이지색 바탕에 갈색 줄무늬를 넣은 디자인을 선보였다. 멀리서 봐도 루이비통 제품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위조업자들은 곧바로 따라 했다. 이후 1888년에는 지금도 유명한 체크무늬 패턴, ‘다미에 캔버스’가 등장했다. 단순한 줄무늬보다 복잡하고 고급스러웠으며, 브랜드만의 시각적 정체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것 역시 완벽한 방어책은 아니었다. 줄무늬든 체크무늬든, 패턴이 단순하면 결국 베끼기 쉬웠다. 루이 비통은 평생 모조품과 싸웠지만, 결정적인 해결책을 보지는 못한 채 1892년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 승부수는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이 던졌다. 아들이 만든 결정적 한 수, 모노그램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를 맡은 조르주 비통은 모조품 문제를 더 이상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다미에 패턴마저 따라 하는 상황이라면, 아예 복제가 어려운 새로운 상징이 필요했다. 그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를 상징하는 패턴을 만들기로 한다. 아버지 루이 비통의 이니셜인 L과 V를 겹쳐 배치하고, 여기에 꽃과 별 모양을 더했다.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성과 일본 가문 문장인 ‘몬’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들이 섞였다. 그렇게 1896년,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이 탄생했다. 처음 목적은 명확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베끼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이 복잡한 문양을 단순한 위조 방지 장치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패턴 자체를 갖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모노그램은 진품을 증명하는 표시였고, 동시에 소유자의 지위를 드러내는 신호가 됐다. 누군가의 손에 들린 가방에 LV 모노그램이 반복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가방을 들고 있다고 보지 않았다. “저 사람은 루이비통을 소유한 사람이다.” 이렇게 읽기 시작한 것이다. 방어가 공격이 된 순간 여기서 루이비통의 가장 흥미로운 반전이 나온다. 모조품이 많다는 건, 그만큼 원본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원본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패턴은 시간이 지나며 진품의 증거가 됐다. 그리고 진품의 증거는 곧 지위의 상징이 됐다. 결국 위조품을 막으려고 만든 방어 장치가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공격 무기가 된 셈이다. 루이비통 모노그램은 “이건 진짜다”라는 선언이었고, “나는 이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신호였고, “이 브랜드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상징이었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위조품이 계속 늘어날수록 진품의 상징성도 함께 커졌다는 것이다. 가짜가 많다는 건 그만큼 진짜의 욕망이 크다는 뜻이었고, 위조품은 의도치 않게 원본의 가치를 홍보하는 역할까지 했다. 짝퉁이 진품의 광고판이 되어버린 셈이다. 130년이 지나도 살아남은 문양 루이비통 모노그램은 1896년에 탄생했으니, 2026년이면 130년을 맞는다.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패션업계에서 하나의 패턴이 100년 넘게 살아남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노그램은 여전히 강력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세대가 바뀌어도, 문양은 계속 루이비통의 얼굴로 남아 있다. 물론 루이비통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모노그램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트렁크 제작에서 출발한 장인정신, 여행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붙잡은 감각, 시대에 맞춰 제품군을 확장한 전략, 그리고 후손들이 지켜온 브랜드 관리가 모두 겹쳐진 결과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모노그램이 있다. 브랜드를 한눈에 알아보게 만드는 힘. 진품과 모조품을 가르는 상징.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리는 시각적 언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가진 패턴은 흔치 않다. 결국, 위기는 브랜드의 무기가 됐다 루이비통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명품 브랜드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위기에서 출발한 것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됐다는 점이다. 루이비통은 모노그램을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니었다. 만들 수밖에 없어서 만들었다. 계속 베껴지니까, 더 복잡하게 만들어야 했다. 단순한 장식으로는 부족하니까, 브랜드의 정체성을 새겨 넣어야 했다. 제품만 좋아서는 안 되니까,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을 만들어야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130년 넘게 살아남은 모노그램이다. 루이비통의 이야기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꽤 의미심장하다. 지금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어쩌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해서, 사람이 부족해서, 경쟁자가 따라 해서, 시장이 너무 좁아서 생기는 제약이 오히려 새로운 차별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루이비통에게 위조품은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골칫거리가 없었다면 모노그램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모노그램이 없었다면, 지금의 루이비통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브랜드는 완벽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방해와 모방, 압박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지도 모른다. 루이비통 모노그램은 그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다. 위조품을 막으려던 문양이, 결국 전 세계가 알아보는 욕망의 아이콘이 되었으니 말이다. “ 커뮤니티 빌런 18+ 에서만 볼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 루이비통 편”
2026.05.04
6
3
구매후기이벤트
  • 종합
  • 뉴스/정보
  • 커뮤니티
  • 질문/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