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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API EXPO 포토 1편 씨발, 사진 고르다 내가 먼저 해탈했다 말보다 빠른 게 있다. 사진이다. 특히 이런 현장은 더 그렇다. 설명은 언제든 점잖은 척할 수 있고, 문장은 적당히 돌려 말할 수도 있고, 보는 사람도 자기 편한 만큼만 이해한 척 넘어갈 수 있다. 근데 사진은 그런 여지를 잘 안 준다. 있는 건 있고, 보이는 건 보인다. 그리고 그 장면 앞에서 남는 건 늘 하나다. 아, 이건 한국에선 진짜 어렵겠구나. 이번에 푸는 상하이 API EXPO 포토가 딱 그렇다. 수위가 세서만이 아니다. 노출이 적나라해서만도 아니다. 이걸 이렇게 밝은 데서, 이렇게 대놓고, 이렇게 산업의 표정으로 펼쳐놓는 장면 자체가 한국에선 낯설다. 우린 늘 18금 분야를 묘하게 다룬다. 없다고는 못 한다.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 한다. 수요가 없다고는 못 한다. 그 수요를 시장처럼 대하는 건 또 불편해한다. 합법이라고는 한다. 근데 합법의 공기를 주진 않는다. 참 이상한 나라다. 성인은 넘치는데 성인을 대하는 태도는 늘 미적지근하다. 시장은 있는데 시장 취급은 못 한다. 소비는 하면서도 담론은 피한다. 눈앞의 현실은 분명한데, 말만 나오면 갑자기 다들 헛기침부터 한다. “적절한 선이…” “사회적 통념이…” “아직은 조금…” 아직은 조금 뭐. 언제까지 조금일 건데.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그거다. 와, 세다. 와, 적나라하다. 와, 대놓고 한다. 근데 거기서 끝나면 반만 본 거다. 바로 거기서 한국과 차이가 난다. 한국은 아직도 민망함으로 분류한다. 필요를 인정하기 전에 체면부터 챙긴다. 현실을 다루기 전에 통념부터 꺼낸다. 그러니까 늘 한 박자 늦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음지로 밀리고, 촌스럽게 남고, 구린 방식으로 굴러간다. 그게 제일 한심하다. 자동차는 산업이고, 술은 산업이고, 뷰티는 산업이고, 건강은 산업이고, 반려동물도 산업이고, 캠핑도 산업이다. 다 브랜드 붙이고, 유통 붙이고, 박람회 열고, 투자받고, 트렌드 분석하고, 당당하게 논한다. 근데 유독 18금만 태도가 흐려진다. 있는데 없는 척. 팔리는데 아닌 척. 보면서도 안 본 척. 그 어설픈 점잖음이 아직도 사회 전체에 끈적하게 붙어 있다. 그래서 상하이 API EXPO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 장면을 아직도 어색해하는 우리 쪽의 수준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니 이래선 안 된다. 진짜로. 성인이 있으면 성인 시장도 있는 거고, 합법이면 합법의 언어로 다루면 되는 거고, 수요가 있으면 그 수요를 산업으로 정리하면 되는 거다. 그걸 끝까지 눈치와 위선 사이에 처박아두니까 담론도 후지고, 유통도 후지고, 문화도 후지고, 결국 보는 눈까지 촌스러워진다. 상하이 API EXPO 포토는 그걸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위보다 수준. 외설보다 태도. 자극보다 현실. 사진 보시라. 그리고 그냥 “세네” 하고 넘기지 말고, 그다음 생각까지 갔으면 좋겠다. 한국, 이래서 되겠어? @happyzon @tenga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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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샵 앞에서 첩보전 찍는 나라 상하이 API EXPO 성(性) 산업 박람회 [발칙버전] 이봐. 수컷들. 다들 예전 같지 않다는 말, 한 번쯤은 속으로 해봤지 않나. 20대 땐 참 존나 부지런했다. 의지는 1도 없는데 거시기가 먼저 설치던 시절.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혼자 발딱서고, 별것도 아닌 자극에도 괜히 민망해지고, 가만히 있어도 혼자 바빴다. 그땐 오히려 귀찮았다. 아니 씨발, 왜 이렇게까지 성실하냐 싶을 정도로 몸이 혼자 열일했다. 오죽했으면, 눈치 좀 챙겨라.. 했던. 근데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알게 된다. 아, 이게 평생 가는 게 아니구나. 아, 인간 몸뚱이라는 게 정신력으로만 굴러가는 물건이 아니구나. 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이쯤 되면 자칭 성문가들은 점잖게 말한다. 무슨 기능 저하가 어쩌고, 남성 건강이 어쩌고, 생활 습관이 어쩌고, 관리가 어쩌고. 다 맞는 말이다. 근데 우리언어로 번역하면 딱 이거다. 그냥 씨발, 늙는 거다. 별수 있나. 예전에는 통제가 문제였는데 이제는 관리가 문제가 된다. 예전에는 “아니 왜 또 이러냐”가 고민이었다면 이제는 “아니 왜 예전 같지가 않냐”가 고민이 된다. 인간은 진짜 존나 간사하다. 있을 땐 귀찮고, 줄면 서운하다. 넘치면 짜증나고, 시들면 자존심이 긁힌다. 여기서부터 수컷들의 진짜 애환이 시작된다. 이건 존심 얘기고, 세월 얘기고, 체력 얘기고,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용히 맞짱 뜨는 얘기다. 몸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술이 쌓이고, 피로가 쌓이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잠이 부족하고 운동은 줄고, 그러다 보면 몸이 먼저 말한다. “야, 이제 예전처럼 막무가내는 아니야.” 현실이 은근히 존심에 스크레치 낸다 뺨을 후려치는 식이 아니라 자존심 안쪽을 푹 찌르는 식으로. 근데 세상이 좋아지긴 했다. 이젠 성인 타이틀 내건 샵도 많고, 관련 제품도 많고, 도구도 많고, 관리든 보조든 케어든 관심만 가지면 접근 자체는 얼마든지 된다. 예전처럼 무슨 뒷골목 풍경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합법 시장도 커졌고, 제품군도 넓어졌고, 말만 못 해서 그렇지 찾으려면 다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다. 들어가기가 씨발 존나 어렵다. 필요하면 가면 되잖아? 합법이잖아? 다 큰 성인이잖아?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근데도 샵 앞에 서면 갑자기 사람이 졸라 비굴해진다. 괜히 주변부터 본다. 반경 살핀다. 누가 오나 본다. 행여 먼저 들어간 사람 없나 확인한다.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딴 데 보는 척한다. 폰 꺼내서 뭐라도 보는 척한다. 타이밍 재다가 “에이 씨발, 다음에 오자” 하고 발길 돌린 적,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나. 뭐 하러 이 지랄을 하냐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놨으니까. 이게 진짜 개떡같은 지점이다. 다 큰 성인이 불법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고, 합법적인 성인용 제품 보러 가는데 왜 죄인 같은 표정을 장착해야 하냐는 거다. 누가 보면 무슨 나라 기밀 빼러 들어가는 줄 알겠다. 아니 씨발, 성인샵 들어가는데 왜 첩보전이 필요하냐고. 뭘 그렇게 숨어. 뭘 그렇게 쫄아. 뭘 그렇게 눈치를 봐. 고추도 쫄고, 존심도 쫄고. 젠장.. 이게 사는 건가 싶지. 근데 또 안 볼 수가 없잖아. 이 나라 분위기가 그렇거든. 이용은 하되 티 내지 마라. 사는 건 되는데 당당하진 마라. 관심은 있는데 드러내진 마라. 필요는 인정하지만, 필요를 가진 네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이게 한국식 민망함의 민낯이다. 존나 비겁하다. 시장도 있고, 수요도 있고, 제품도 있고, 고객도 있는데 이용자만 끝까지 민망하게 만든다. 다들 속으로는 아는데, 겉으로는 모르는 척한다. 이용은 하면서 존재는 지운다. 그렇게 사람 하나를 계속 눈치 속에 처박아 넣는다. 그러니 상하이 API EXPO 같은 현장이 기가 막히는 거다. 거긴 최소한 이런 구차함이 덜하다. 이게 성인 대상의 합법적인 시장이면, 그냥 산업으로 본다. 제품은 제품이고, 유통은 유통이고, 브랜드는 브랜드고, 고객은 고객이다. 거창한 척도 없고, 괜히 순결한 척도 없고, 오해받을까 봐 말 더듬는 분위기도 없다. 그냥 있다. 그리고 판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 근데 존나 큰 차이다. 우리는 늘 욕망을 문제로 삼는 척하지만 사실은 욕망이 들킨 사람의 표정을 문제 삼아왔다. 필요를 인정하는 순간의 민망함.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자존심.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현실. 그걸 못 견뎌서 사람을 끝까지 농담 뒤에 숨게 만든다. 그래서 성(性)이 주제만 나오면 다들 낄낄댄다. 진지하게 못 간다. 자꾸 허세를 섞고, 자꾸 개그를 치고, 자꾸 센 척을 한다. 왜? 진지하게 말하는 순간 너무 적나라해지니까. “나도 예전 같지 않다.” 이 말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건드리거든. 세월. 피로. 자존심. 관계. 자신감. 침묵. 다 들어 있다. 그러니까 그저 아랫도리 얘기가 아닌. 몸 얘기고, 나이 얘기고, 남자들이 제일 말 못 하는 존심의 영역 얘기다. 근데 우리는 늘 이걸 싸구려 농담으로만 소비한다. 소변기가 깨지니 어쩌니, 농담 몇 개 던지고, 낄낄대고, 괜히 더 센 척하고, 막상 진짜 필요한 얘기는 못 한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인 고민은 늘 음지에 남는다. 다들 괜찮은 척, 아직 멀쩡한 척, 별일 아닌 척만 한다. 근데 몸은 안다. 세월도 안다. 본인도 안다. 그래서 더더욱 이건 숨겨야 할 얘기가 아니라 성인이 성인답게 다뤄야 할 얘기다. 필요하면 찾고, 궁금하면 보고, 도움 되면 사고, 아니면 마는 거다. 그 단순한 일을 왜 아직도 얼굴 붉히며, 주변 살피며, 아무도 없을 때 후다닥 들어가야 하냐는 거다. 결국 제일 촌스러운 건 욕망이 아니다. 제일 촌스러운 건 다 큰 성인을 끝까지 눈치 보게 만드는 이 사회의 구질구질한 태도다. 몸은 늙는다. 그건 자연스럽다. 필요가 생긴다. 그것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운 걸 끝까지 비밀 취급하고, 민망함 취급하고, 농담감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다. 다 큰 성인이 합법적인 성인 시장 앞에서 주변 정찰 돌리고, 헛기침하고, 괜히 모자 눌러쓰고, 사람 없을 때만 냅다 뛰어들어야 하는 나라. 씨발. 이건 품위가 아니다. 이건 건전함도 아니다. 그냥 존나 촌스러운 거다. 그리고 상하이 API EXPO가 두 번째로 흥미로운 바로 그거다. 저쪽이 특별히 더 대담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유난히 더 쪼그라들어 있었던 거다. 저쪽은 성인을 성인으로 놓고 보는데, 우리는 아직도 성인을 민망함 속에 가둬두고 구경한다. 그러니 이제는 인정하자. 욕망이 문제가 아니다. 노화가 문제도 아니다. 필요가 생기는 것도 문제 아니다. 문제는 그걸 끝까지 없는 척, 아닌 척, 부끄러운 척하게 만드는 이 오래되고 질척한 눈치 문화다. 씨발, 다 큰 성인이 성인답게 살겠다는데 대체 왜 아직도 남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냐. 발딱 서던 시절은 갔는데 민망함은 아직 현역이다 @happyzon @tenga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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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우리가 촌스러웠던 거다 상하이 API EXPO 성(性) 산업 박람회 [순화버전] 현자가 그랬다. 야동 한 편도 안 본 자, 내게 돌을 던져라. 근데 한국 사회는 이 대목만 오면 존나 웃긴다. 다 안다. 다 봤다. 다 소비한다. 근데 막상 대낮에 꺼내놓고 말하면 갑자기 전국민이 단체로 유교 걸, 유고 맨 코스프레를 하고 지랄이다. 밤에는 존나 솔직한데 낮에는 미친 척 점잖다. 손은 누구보다 현대적인데, 입은 조선시대 장독대 밑에 처박아놨다. 이게 한국식 성 담론의 본질이다. 할 건 다 하는데, 했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어한다. 소비는 하는데 인정은 안 한다. 수요는 넘치는데 시장은 없는 척한다. 검색창은 후끈한데 공론장은 냉탕이다. 아니 씨발, 이쯤 되면 절제가 아니라 집단적인 광기(연기)다. 다 같이 안 본 척, 안 한 척, 모르는 척. 서로가 서로의 위선을 봐주면서 “그래도 우린 품위 있잖아요” 같은 개소리를 시전한다. 맨날 그 소리다. “적절한 선을 지켜야죠.” 좋다. 근데 그 적절한 선이 대체 뭔데? 누구한테 적절한데? 성인한테? 아니면 성인도 끝까지 애새끼처럼 관리하고 싶은 사회한테?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는 이상하게 욕망 자체보다 욕망이 들킨 장면에 더 발작한다. 욕망은 괜찮다. 들키는 건 안 된다. 사는 건 괜찮다. 드러내는 건 안 된다. 뒤로는 다 해먹으면서 앞으로는 늘 “저는 그런 거 잘…” 이지랄에 진땀. 그래서 한국의 성 담론은 늘 반 발짝 뒤에 서 있다. 절대선의 코앞에서 얼쩡거리다가, 막상 문 열릴 것 같으면 화들짝 놀라서 뒤로 튄다. 존나 소심하다. 아니, 소심한 척하는 게 더 정확하다. 실은 다들 관심 존나 많으니까. 그래서 더 웃긴 거다. 박람회? 별게 다 있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주류, 뷰티, 펫, 캠핑, 커피, 헬스케어. 세상만사 다 전시하고 다 떠든다. 근데 유독 성 산업만 나오면 사회 전체가 갑자기 헛기침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어흠, 그건 좀…” 뭐가 좀인데 씨발. 시장도 있고 수요도 있고 기술도 있고 유통도 있는데, 말만 나오면 갑자기 품위, 건전, 민망 같은 단어를 목에 걸고 켁켁댄다. 그러니까 상하이 API EXPO를 아무도 문제라 않는다. 아예 숨길 생각을 안한다. 비것하게 쫄지도 않는다. 애매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냥 전시장 한복판에 까놓고 산업으로 판다. 그게 제일 충격적이다. 야해서 충격적인 게 아니다. 너무 대놓고 산업이라 충격적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건 늘 촌스럽다. 빨간 조명. 민망한 포즈. 값싼 선정성. 낄낄대는 저질 농담. 근데 막상 현장서 보이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비즈니스의 면상이다. 부스마다 브랜드를 세우고, 유통을 붙이고, OEM을 논하고, 소재와 패키징을 열거하고, 바이어와 명함을 교환한다. 우리가 뒤에서 킥킥대며 음지 취급하던 것들이, 저기서는 SKU 달고 공급망 타고 해외 판로 뚫는 멀쩡한 상품이 되어 서 있다. 아, 이거였네. 우리가 야하다고 느낀 건 제품이 아니라 이걸 산업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우리 대가리의 낡음이었네. 그 순간 아찔한 장편이 펼쳐진다. “와, 저걸 저렇게도 만드네?”가 아니라 “와, 우리는 씨발 아직도 이걸 이런 수준으로밖에 못 보네?”가 된다. 현장이 낯뜨거운 게 아니다. 오히려 현장은 감정없는 연쇄 살인마 처럼 차갑다. 너무 차갑고, 너무 정직하고, 너무 사업적이라서 민망해진다. 그런데, 민망한 건 부스가 아니라 우리의 위선인데도. 한국은 늘 이딴 식이다. 욕망은 인정 안 하고, 관리만 하려 든다. 성인은 못 믿고, 통제는 믿는다. 자율은 무섭고, 검열은 편하다. 현실은 복잡한데, 도덕 흉내는 존나 단순하다. 그래서 맨날 포장만 한다. 건전한 척. 품위 있는 척. 조심스러운 척. 근데 그 포장지 안 까보면 뭐가 있냐. 똑같은 인간 욕망이다. 남들도 다 알고 우리도 다 아는 그거. 차이가 있다면 딱 하나다. 남은 그걸 어엿한 산업으로 정리하고, 우린 그걸 결국 허리 아래 음란패설쯤으로만 소비한다. 이 지점에서 API EXPO는 거의 철학이다. 민망함이 일정 수위를 넘으면 해탈이 온다. 아, 인간이 원래 이런 동물이구나. 아, 문명이란 게 결국 욕망에 명찰 붙이고 카테고리 나누고 유통 하는 일이구나. 아, 어제는 음지라 부르던 게 오늘은 헬스케어가 되고, 오늘은 취향이라 부르던 게 내일은 글로벌 소비재가 되는구나. 그러니까 다시 묻게 된다. 도대체 뭐가 더 음란하냐? 대놓고 합법 산업으로 전시하는 쪽이 음란하냐, 아니면 뒤로는 다 소비하면서 앞으로는 죽어도 아닌 척하는 쪽이 음란하냐. 내가 보기엔 후자가 훨씬 더 논란거리다. 전자는 적어도 솔직하다. 후자는 늘 정의로운 척, 걱정하는 척, 사회를 위하는 척하면서 정작 현실은 음지로 밀어 넣고 논란의 음지를 다시 손가락질하면서 우월감까지 챙긴다. 이게 제일 구리다. 제일 비겁하고, 제일 찌질하고, 제일 야비하다. 상하이 API EXPO 현장은 ‘거시기’가 적나라하다. 거기엔 최소한 쫄림이 없다. “이건 성인 대상의 합법적 시장이고, 우리는 이걸 만들고 유통하고 판다.” 끝.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변명도 없고, 가짜 순결도 없고, 괜한 도덕 코스프레도 없다. 반면 우리는 늘 변명부터 깐다.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이걸 조장하자는 건 아니고요…” “사회적으로 우려되는 부분도 있고요…” 씨발, 말이 길어질수록 구린 거다. 진짜 자신 있으면 해명하지 않는다. 그냥 존재한다. 그리고 판다. 그래서 API EXPO 박람회의 핵심은 18금이 아니다. 핵심은 성인을 성인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볼 사람 보고, 살 사람 사고, 판단은 각자 하고, 시장은 시장대로 굴러간다. 너무도 당연한 걸 우리는 아직도 못 한다. 늘 누가 대신 선을 긋고, 늘 누가 대신 민망해하고, 늘 누가 대신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말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유사회인 척은 또 존나게 한다. 솔직히 말하자. 상하이 API EXPO가 충격적인 게 아니다. 이런 산업이 존재하지 않는 척해온 우리 태도가 더 충격적이다. 전시장 안이 화끈한 게 아니라 전시장 밖에서 아직도 아닌 척하는 우리 면상이 더 뜨겁다. 결과는 뻔하다. 욕망은 안 사라진다. 사라지는 건 늘 위선뿐이다. 근데 우리는 아직도 욕망을 없애려는 척하면서 위선만 키우고 있다. 그러니 자꾸 촌스러워지는 거다. 세상은 이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는데, 우리는 아직도 책 표지 붙들고 “이 책, 좀 야한 거 아니에요?” 이러고 앉아 있다. 아니다. 야한 건 책이 아니다. 현실 앞에서 끝까지 아닌 척하는 그 쫄보 같은 태도가 더 야하다. 상하이 API EXPO는 분명 18금이다. 근데 거기서 명확한 건 선정성이 아니다. 위선 없는 태도다. 합법이면 전시하고, 시장성이 있으면 팔고, 수요가 있으면 산업이 된다. 단순한 진실을 우리 밖의 국가는 그냥 인정한다. 우린 아직도 그걸 인정 못 해서 괜히 더러운 척, 무서운 척, 민망한 척, 품위 있는 척만 반복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인정하자. 야한 건 욕망이 아니다. 추한 건 위선이다. 그리고 상하이 API EXPO가 우리한테 날리는 진짜 촌철살인은 이거다. 씨발, 문제는 저쪽이 너무 과감한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래 구질구질했다는 거다. 우리 이제는 발칙해지자! 거시기를 숨긴다고 숨겨지던가! @happyzon @tenga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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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 무선 연결 오나홀 : 탑툰1황,동아리랑 건물주누나 이후 완벽한 세대교체 SS 호신술 가르쳐드립니다/건물마다 컨셉이 다름/소은/선생님의 노력/음담패설/관계역전/마니또/믿으세요! 처음을 바칠지어니 S 갓블레쓰유/이세계 밀프 헌터/아파트 관리인이 되었다/남자가 희귀함/해줘,해줘 A 미시 학개론/부대에 남군이 나 혼자/나는 뱀파이어다/위험한 거래 그리고 옆집여자 B 스위치온 : 얼마전에 시즌 2 나왔는데 시즌1에 비해 작화나 스토리 너프 수준 옥탑방 야스킹 : 그럭저럭 코인으로 떡상 : 남주 발암수준 C 엄마 먼저 드세요 : 작화 갈수록 폼 하락 하차 연애 한도 초과 : 작가 복귀이후 초반이랑 지금 작화가 달라서 건강문제로 이해하지만 스토리 진도가 넘안나감 세트업 : 스토리 ㅈ망 수준 그림작가 아깝다 구멍일지문단속 : 감성이 저랑 안맞음 불호 아줌마 교환 계획 : 주인공이랑 그친구 행동 애같아서 보기 싫음 불호라 하차 비밀수업 : 스토리 따위 박살나고 하차한지 오래됨 요구르트 아줌마 : 초반 작화 좋은데 갈수록 작화나 스토리 둘다 망함 시아버지가 ㄸ먹음: 작화 이슈로 하차 미안,연애 생각은 없어 : 템포가 넘느리고 남주 캐붕까지 와 버림 정조역전 : 스토리 답답 작화 무너져서 하차 새가족이 너무 잘해준다 : 작화 이슈로 하차 퍼온자료 입니다.. 저는 나열된 작품들 본 적이 없는데 인기가 많은 모양이네요.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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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인 콘텐츠는 아닙니다만~ 민감한 내용을 다룹니다. 성인용 완구 '텐가'가 현해탄을 건넌 지 공식적으로 2년이 다 됐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에 관한 잘못된 정보들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여전히 횡행한다.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만악의 근원이어야 한다. 낭설들에 따르면 그 행위는 인간을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하게 만들고, 여드름을 유발하고, 청소년의 경우 성장에 지장을 주며, 남성에겐 M자 탈모를 안긴다. 그것을 행하되 즐기기 어려운 까닭이다. 지금 이 시대 마스터베이션에 씌워진 운명의 굴레는 가혹하다. 단순반복 속에 분명 즐거움이 있지만 뭇사람들이 이를 오롯이 만끽하지 못한다. 출처 모를 죄책감 때문에, 끝 모를 자괴감 때문에 그 행위는 지금까지도 영원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로 여겨지고 있다. 즐거움을 즐거움이라 부르지 못하고, 황홀함을 황홀함이라 칭하지 못한다면, 기쁨을 구하되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에 비분강개한 남성 사용자 3명이 의기투합했다. 무의식적 자기억압의 '방화벽'에 작은 균열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 한 사람씩 에어테크, 버큠컵, 에그 등 텐가 제품 한 종류를 맡아 각자의 공간에서 만끽했다. 이 같은 작은 몸짓을 계기로 그동안 평가절하된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自慰)의 의미가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괜한 부끄러움은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세상에 내놓는 3인 '오발탄'의 몫으로만 남기고 싶다. 여기, 충만한 자기사랑의 체험기를 공유한다. ◆"빠빠빨간맛 궁금해 텐가?" 다회용 제품 '에어테크'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오후 어느 날의 노오란 햇살이다. 남향이 아닌 고향 집은 집 안까지 햇볕이 드는 시간이 길지 않았고, 햇볕이 집 안까지 비추는 시간이면 두꺼운 커튼을 걷어내고 그 자리를 찾아가 놀았다. 장난감은 레고 블록이나 변신 로봇이었을까. 어른이 된 지금도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포켓몬스터 나노블록을 쌓는다. 이렇게만 보면 어린 시절과 판박이지만, 그때는 상상하지 못한 새 장난감도 생겼다. 이 장난감은 디자인부터 끝내준다.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몇 번이나 받았는지 세는 게 번거로울 정도다. 이 장난감은 '실용적이지 않은 것이 즐거움을 준다'는 대학 시절 교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아주 실용적인 방법으로 즐거움을 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손짓이 되었다. 텐가. 영어로 하면 TENGA. 장난감은 영어로 토이(toy). 섹스토이(sex-toy)도 넓은 범주로 보면 '장난감'의 영역에 속한다. 텐가는 "섹슈얼 웰니스"를 지향하는 일본의 섹스토이 및 관련 제품 전문 기업이다. 섹스토이는 우리말로 '성인용 장난감' 정도로 부르는데 단어가 낯설어서 보통은 섹스토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섹스토이를 공개된 장소에서 언급하면 '저 변태놈'이라는 글씨가 눈빛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다 큰 어른이 좋은 장난감 좀 갖고 놀겠다는데, 필자는 즐거운 성생활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왜곡하려는 음해세력의 시도에 굴복할 수 없었다. 찬양을 그만두기에 텐가는 너무 훌륭한 장난감이다. 빨간색 에어테크 제품. /사진제공=텐가코리아 섹스토이는 혼자 사용하는 제품도 있고 커플이 사용하는 제품도 있다. 가을바람이 뼈를 파고드는 날씨, 20대 후반의 솔로 필자에게 커플 아이템은 사치요, 허황된 꿈이다. 그래서 구매한 제품은 '텐가 에어테크 레귤러'다. 물론 커플이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흔히 남성이 혼자 사용하는 제품이다. 장난감을 한 번 쓰고 버리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다회용 제품을 골랐다. 에어테크는 흘끗 보면 커다란 도장처럼 생겼다. 필자가 구매한 에어테크는 빨간 줄무늬 모양의 얇은 필름 안에 빨간색 플라스틱 케이스가 있고, 그 안에 진짜 장난감인 실리콘 본체가 들어있다. 빨간 케이스는 분리 가능한 바닥 뚜껑이 달려있고, 윗부분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사용할 때는 바닥 뚜껑을 떼어내고 사용한다. 상단에 난 구멍은 일회용 제품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 '진공 기능'을 위한 구멍이다. 물론 핵심은 실리콘 본체다. 처음 구매할 때는 두 번가량 사용할 수 있는 젤도 함께 준다. 다만 젤을 한 번 개봉하면 추후 보관이 애매하다. 얇은 필름을 벗기고, 에어테크를 처음 마주한 필자는 기대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꼈다. 텐가, 섹스토이 등 말로만 들었지 에어테크와의 첫 만남이 곧 섹스토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채도 높은 붉은 색 플라스틱 케이스는 신호등의 빨간불과 같았다. "날 잡고 들어 올려, 난 위험하지만 즐거움을 줄 거야." 서리한을 뽑아 든 아서스 왕자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썩씨딩 유, 파더." 필자도 무수히 많았을 선배 '텐가맨'들의 의지를 잇기로 결심했다. 젤을 개봉하고 실리콘 재질의 입구에 발랐다. 시각은 저녁 9시 30분. 조용히 불을 끄고 시청각 자료 상영을 개시했다. 그리고 두 개의 세상이 서로 만난 첫 순간, "우오오오 믿고 있었다구 젠장!" 텐가와의 조용한 데이트를 수십 회 즐긴 지금 돌이켜보면, 필자가 텐가의 팬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분명 그 순간이었다.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했다. 첫 사용이었다. 흰색 실리콘 본체는 안쪽에 부드러운 돌기들이 자리하고 있다. 돌기가 하나하나 느껴질리 없지만 사용감 상승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처음 사용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적절한 압박감이었다. 에어테크는 빨간색 플라스틱 케이스를 잡고 사용하기 때문에 평상시(?)와 달리 손의 압력이 전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절한 수준의 압박감이 유지된다. 조금 좁아 보이는 입구도 뛰어난 탄성을 발휘해 적절히 기능을 발휘한다. 상상한 이상의 만족감이었다. 실리콘 본체와 젤, 필자가 만나 삼위일체를 이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행복합니다. 다소의 시간이 흐르고, 첫 사용을 마무리했다. 최근 1년간 벌인 위로행각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기억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진공 기능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플라스틱 케이스 위에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고 상하운동을 하면 공기가 새지 않게 꽉 잡아주는 느낌을 준다. 다만 방귀 소리처럼 뿡뿡대는 소리가 나기도 해서 신경이 거슬리는 감이 있고, 사용감도 진공 기능을 사용하지 않은 때가 더 좋았다. 뒤처리는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았다. 사용한 뒤 젤 등이 흐르지 않게 뒤집어 화장실로 가기만 하면 됐다. 에어테크는 사용 후 플라스틱 케이스와 실리콘 본체를 분리해 물에 씻고 말려서 사용하면 된다. 사용법 안내서를 자세히 읽지 않았는데, 전용 세척액을 판매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세척에 크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실리콘 외부에는 기하학적인 패턴이 들어가 있고, 안쪽에는 돌기가 들어있는데 세척이 어렵지는 않다. 필자는 평소에 사용하는 바디워시 제품으로 씻고 있다. 지금도 화장실 벽장에는 곱게 씻은 텐가 에어테크 실리콘 본체가 자리하고 있다.  씻는 과정에서 한 번은 호기심이 생겨, 안과 밖을 뒤집어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뒤집어서도 사용은 가능했지만 굳이 더 좋은 사용감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필자는 일반적인 방식대로 돌기가 있는 면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용에 주의할 점도 있다. 성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제품은 젤을 바르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고통을 즐기는 특이 취향이라면 모를까, 윤활액을 사용하지 않으면 쾌감을 느끼긴 어렵다. 필자의 한 지인은 다른 친구에게 곱창처럼 생긴 섹스토이(오나홀, 남성용 자위기구)를 선물 받고 젤 없이 사용하고는 엄청난 악평을 남긴 일도 있다. 젤 사용에 관해 추가로, 젤을 바르더라도 바로 매끄럽게 삽입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두 물건(?)에 충분히 윤활액이 묻어야 원활한 사용이 가능하니 삽입하는 첫 순간에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강한 압력을 원하는 사람은 플라스틱 케이스를 불편해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강력하게(?)'를 지향하기에 케이스 없이 실리콘만으로 사용해봤지만, 실리콘의 미묘한 끈적거리는 촉감 때문에 플라스틱 케이스와 함께 사용할 때보다 오히려 이물감이 컸다. 기괴한 괴생명체가 손바닥에 들러붙은 기분이라고 할까. 깔끔하고 안정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케이스와 함께 정석적인 방식대로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텐가 에어테크 제품의 경우, 강도가 △젠틀 △레귤러 △스트롱으로 나뉘는 만큼 다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대형 물건 보유자를 위해 큰 크기의 '울트라' 규격 제품도 나와 있지만, 보통의 경우는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필자가 보통 사이즈를 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울트라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 끝까지 열어볼 텐가?" 손안의 우주 '버큠컵'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홀로 남은 밤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말초적 탐닉. 고독한 밤을 겪어본 이들은 안다. 그 끝은 언제나 공허했다. 후련함보다 후회감이 뒤따랐다. 쓸쓸한 결말이 예상됨에도 욕망의 불꽃 한가운데로 자신의 시간과 정신을 내던진 이들은 스스로가 한 마리 불나방만 못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자조 속에서 번민을 거듭해야 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6년 11월 텐가 한국 법인이 설립됐다. 이전부터 텐가는 유명했다. 후기들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게 요지였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는 뭇 남성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위대한 경험주의자들은 일본여행 기념품으로 그것을 챙겨왔다. 해외직구족도 가세했다. 이 같은 대열에서 나는 열외였다. 그런 걸 굳이 돈 주고 살 필요까지야. 탐닉의 시간에 특별할 게 얼마나 더 있겠는가. 도구를 활용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더 황홀할 순 있겠지만 상상만으로도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아니하다(知足不辱).' 어느 날 텐가가 수중에 들어왔다. 꽁꽁 얼었던 나의 선입견은 한 번의 경험으로 녹아내렸다. 지레짐작했던 만큼 깊은 번뇌가 밀려오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마쳤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 비운 만큼 다시 채워지는 만족감. 무엇보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지평이 손안에서 열렸다. 만끽한다는 게 무엇인지 텐가는 나에게 가르쳐줬다. 그분의 성함은 오리지널 버큠 컵(original vacuum cup). 이름처럼 컵 안에 우주가 깃들었다. 비어 있음으로써 가득하다는 역설의 가르침. 사용법은 간단하다. 도장처럼 생긴 이 물건의 하단 포장을 벗긴다. 빨간 포장 아래로 새하얀 본체가 드러난다. 뚜껑을 벗긴다. 상단 에어홀 스티커를 뗀다. (스티커를 떼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면 갈수록 고조되는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익숙한 손으로 이것을 움켜쥔다. 검지를 펼쳐 에어홀 주변에 둔다. 그리고 심호흡 한 번. 마음의 준비까지 마쳤다면 드디어 때가 됐다. 이것과 그것을 밀착한다. 제품의 입구(?).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다. 물질의 세 가지 형태가 빚어낸 감각의 삼중주. 버큠 컵 내부는 이 세상 느낌이 아니었다. 제품의 내부 표면은 실리콘 재질로 아이스크림보다 부드럽다. 거기에 윤활제가 덧발려 있는데 물에 불린 해조류처럼 끈적거리고 미끈거린다. 그 일을 치르는 데 충분한 조건이다. 하지만 텐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위적인 '진공감'을 더했다. 컵을 상하로 움직일 때마다 '푸슉'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내부 압력이 낮아지고 그것과 이것 간의 거리감은 허물어진다. 상부 에어홀에서 검지를 떼면 희박한 공기로 인한 진공감은 사라진다. 개인 취향에 따라 느긋함과 갈급함 사이를 오가며 사용하면 된다. '현자타임'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대 로마의 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는 "모든 동물은 관계 후에 슬프다"고 했다. 중국 명나라 문인 홍자성은 『채근담』에 "색을 누린 후 음욕을 생각하면 남녀의 구분도 없어진다"고 적었다. 현대 의학계는 이를 가리켜 PCT(post-coital tristesse; 그 후의 슬픔)라고 명명했다. PCT 발생 원인은 복합적이다. 절정 전후 호르몬 분비에 따른 감정 변화가 주원인이라는 게 정설이다. 심리적 문제도 한몫한다. 홀로 그 일을 치르는 경우 PCT는 더욱 거세다. 혼자만의 탐닉은 대부분 은밀하게 이뤄진다. 야심한 시각,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가족 몰래 일을 해치워야 하는 경우 심리적 압박감은 상당하다. 제3자에게 들키지 않고 행위를 서둘러 끝마치는 데 자연스럽게 초점이 맞춰진다. 잘못된 습관은 1분 1초가 절실한 순간에 본인의 의지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없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텐가는 치료기구에 가깝다. 실제로 일본 의료계 현장 일부에서는 텐가 제품을 조루·지루 치료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9년 9월 일본 성기능학회에선 '사정장애 환자에 대한 Masturbator를 이용한 재활'이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논문은 텐가 제품을 사정장애 치료의 대안 중 하나로 소개했다. 텐가는 또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행복을 되찾아준다. 자극적인 시각자료가 없어도 괜찮다.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 일의 기쁨이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음을 텐가는 일깨워준다.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희망만 남긴 채 상자 뚜껑을 닫아버렸듯, 우리들도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 일을 서둘러 해치워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그 일이 재앙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 죄악시하면서. 5년째 고독한 나날을 보내는 친구 K.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를 보면 나는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이제는 혼자가 편하다." 그의 표정에 일순 외로움이 스친다. 그의 밤도 무척 길고 깊었으리라. 그 끝은 매번 허망했으리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끝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었으리라. 자취하는 그에게 텐가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또한 잊고 지냈을 작은 즐거움을 다시 발견하게 되길 바라며. 배송메모란에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남겼다. 간밤의 욕망은 결코 허망한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아. '공수래공수거' ◆"새로운 자아를 만나볼 텐가?" 컴팩트한 환희 '에그' 손은 힘이 세다. 그리고 손은 어제도 오늘도 인류가 이룩해낸 문명 속에 살아 있다.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힘 센 것은 손에서 나왔다. 약 450만 년 전, 인류는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걷는데 많이 쓰이던 손은 자유로워졌다. 인류는 해방된 손으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테이프를 끊은 손의 발달은 뇌의 발달도 가져오며 상호작용했다. 더욱 더 정교해진 손은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문명의 토대가 됐다. 인공지능(AI) 로봇도 아직 인간의 손이 보여주는 미세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하지 못한다. 그런 인간의 손은, 아마 인류가 태곳적부터 시작했을, '수음'을 위한 도구까지 창조해냈다. 필자의 손에 쥐어진 텐가의 '에그' 시리즈. 첫 모습에선 전혀 성인용품임을 알아챌 수 없었다. 이름처럼 달걀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하지만 귀여운 겉모습이 마음속 허들까지 무너뜨리진 못했다. 억압된 무의식이 스멀스멀 머릿속에 똬리를 텄다. 부끄러운 행동은 몰래, 조용히 해야 한다. 행동의 폭이 클수록 마음의 진폭도 커진다. 들킬 가능성이 높아 불안해진다는 말이다. 인류학적 반감도 있었다. 인류 문명의 기원인 손이 만들어낸 도구. 에그도 또 하나의 문명인 셈이다. 이것으로 원초적 행위를 해야 하다니,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 아닐까. 그냥 손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참을 수 없는 비효율이란 생각이 샘솟았다. 하지만 나에게 에그는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수음을 부끄러워하는 이 무의식을 허물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까지 이런 억압 속에 살 것인가. 성인용품을 말하고 이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성 담론에서 자유로운 자아의 탄생. 의식 속에선 갈망하던 바 아니던가. 강박을 의식 속에 주입하니 용기가 생겼다. 알을 깨뜨리는 일은 조그마한 균열을 내는데서 시작된다. 어느 깊은 가을 밤. 자정이 넘은 시각. 내 방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다. 협탁에 놓아 둔 에그를 손에 쥐었다. 친절하게 점선 표시를 해준 덕분에 포장지를 쉽게 벗겼다. 플라스틱 소재의 알이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알에 힘을 주니 두 조각으로 나뉘어지며 계란 모양의 실리콘 덩어리가 나타났다. 불투명한 흰색이다. 묘하다. 알 수없는 기시감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모습을 살폈다. 덩어리에 구멍이 나 있다. 그 자리엔 이용 방법을 담은 설명서와 은색 포장지로 밀봉된 로션이 꽂혀있다. 설명서를 볼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본능이 일깨운다. 로션을 구멍 안에 부었다. 전등을 껐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포장지를 벗긴 에그의 몸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에그를 결착했다. 그 상태로 몸 쪽으로 최대한 끌어당겼다. 실리콘 덩어리는 마치 준비된 것처럼 제 길이를 늘렸다. 신축성이 좋고 촉촉하다. 시작했다. 이중창 너머로 달빛인지 가로등 불인지, 알 수 없는 빛이 내 방안에 흐붓하게 흘렀다. 평소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다. 손과 함께 했을 땐 말이다. 하지만 에그의 감도는 나를 지름길로 안내하는 듯 미끌거렸고, 또 부드러웠다. 시간이 갈수록 미각과 후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한 곳에 집중됐다. 도달 예정 시간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속도를 낸다. 주변시에 잡히는 모든 물체들의 모습이 흐려진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이 이지러지는 순간,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아래부터 시작된 무언가가 등 위를 타고 올라온다. 에그는 그 둥근 몸으로 모든 걸 받아냈다. 따로 뒤처리해야 할 일은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이완된 육신만 남았다. 창밖을 내다 봤다. 가을 밤 하늘과 집 앞 실개천, 일렬로 서 있는 나무들. 모든 것이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였다. 그 전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욕망의 그림자는 자취를 감췄다. 방의 불을 켰다. 불투명한 하얀색 에그가 침대 위에 놓여 있다. 자괴감이 엄습한다. 문명의 이기는 어디까지 일상을 잠식해오는가. 나는 꼭 에그를 사용해야만 했는가. 손에 쥔 상태로 에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름은 에그. 유정란과 달리 잉태될 수 없는 존재. 그런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잉태될 가망이 없는 씨앗을 품는 존재. 왜 에그의 몸체가 불투명한 흰색인지, 나는 알 것만 같다.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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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코어 울트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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