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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 이번 기회에 방송 접고 자연인으로 사시길....

 
쪽지 2026-08-1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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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이 욕을 쳐 듣는 이유


조상의 친일 행적을 이유로 후손까지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구도 자신의 조상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배우 하영은 왜 이토록 거센 비판을 받고 있을까. 문제는 혈통이 아니라 이전에 취했던 태도다.


하영은 여러 방송과 인터뷰에서 증조부부터 이어진 ‘4대째 의사 집안’을 공개했다.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하고 한양에서 양의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까지 진료한 증조부의 이력은 자랑스러운 가문의 역사로 소개됐다. 집안의 성취를 자랑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가문의 역사를 자신의 배경과 명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 역사에서 불편한 부분만 골라 지울 수는 없다.


방송 이후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과 함께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졌다. 안상호는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정친목회는 조선인 유력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돼 일제의 ‘내선융화’ 정책에 협력한 친일 성격 단체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는 안상호의 가정을 일본식 생활과 동화의 모범 사례로 내세운 기사도 실렸다.


그런데 하영 측이 처음 내놓은 답변은 “사실무근”이다. 충분한 자료를 확인한 뒤 반박한 것도 아니다. 관련 기록이 잇따라 제시되자 소속사는 하루 만에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했다며 사과했다. 자랑할 때는 4대에 걸친 가문의 역사를 또렷하게 기억했지만, 불편한 기록이 나오자 확인보다 부정이 먼저였던 셈이다.


안상호가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은 아니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내용만으로 그를 국가가 공식 지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하영 집안의 현재 재산이 일제강점기의 부역을 통해 형성됐다고 주장할 근거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중이 분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문의 영광은 적극적으로 계승하면서 문제의 가문에 따라붙는 역사적 의문에는 “사실무근”이라는 네 글자로 외면하려 했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이력만 자신의 유산이고, 불편한 기록은 자신과 관계없는 옛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 부역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사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사회적 지위와 인맥, 경제적 기반을 지켜낸 집안이 적지 않았다. 반대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가운데 상당수는 오랜 세월 생활고와 사회적 소외를 감당해야 했다. 이 뒤틀린 역사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기에 ‘명문가의 후손’이라는 자랑은 다른 누구에게는 불편하고 잔인한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영이 조상의 삶을 대신 사과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증조부의 이력을 꺼내 가문의 명예로 사용했다면, 새롭게 확인된 기록을 외면하지 않고 정확히 설명할 책임은 생긴다. 필요한 것은 친일 후손이라는 이유로 평생 고개를 숙이라는 요구가 아니다. 무엇을 확인했고, 왜 처음에는 사실무근이라고 단정했으며, 지금은 그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자신의 입으로 밝히는 일이다.


가문의 영광은 4대째 자랑하면서 가문의 흑역사는 하루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가문의 후광은 누리면서 그 후광이 만들어진 역사의 그늘에는 눈을 감으려 한 행태는 영혼이 털릴 정도로 욕을 쳐 들어도 마땅한 죄악이다

 

 

 

“난 독립후손이다. 항시 가난했다. 사실 가난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화창한 날엔~ 흙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면 벽이 비가 젖어 눅눅하고~ 신문 무수히 덧댄 흙벽 위로 곰팡이사 스물스물 올라오는 환경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다. 증조할아버지는 독립의병을 조직하셨고, 큰 아버지는 5.18을 세상에 알리신 분이다. 조상님이 쓰신 시조는 역사책에, 취재수첩은 유네스코문화유산이 되셨다. 

 

난 그분들을 존경한다. 세상을 이롭게 하셨으니.... 그런데 하영같이 밝게만 자라난 애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며 나 스스로가 속물이 된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활동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더라. 40 후반.... 서울 응암에서 월세로 산다. 결혼은 꿈도 못 꾸었다. 그래도 지금은 50원이 없어 신라면과 삼양라면 사이에서 고민하지는 않는다. 

 

20대 시절에는 고시원 갈 돈도 없어서 남의 사무실에서 생활했다. 그때에 비하면 과분한 삶을 살고있다. 내가 물려받은게 있다. 의병활동을 시작했던 출발점이자 생가터. 그곳엔 지금은 돌아가신 선대께서 독립을 기리는 시조를 비석에 새겨놨다. 난 자식이 없으니.. 나 죽으면 그것도 끝나겠지만.. 독립후손의 삶이 거의 나같을 것이다. 아마 내또래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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