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CPU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직구 특성상 긴 기다림 끝에 받은 제품이라 설렘은 더욱 컸다. 포장을 뜯는 순간까지도 설마 내가 '그' 불운한 확률에 당첨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직구라는 선택이 앞으로의 내 일상을 뒤흔들게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 알리에서 검색한 라이젠 9600X. 같은 제품에 가격이 천차만별
시작은 순전히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무조건 싸다"며 주변에서 호언장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따라 왜 그 말이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살림살이는 점점 팍팍해지고 있었고, 새로운 CPU가 필요했기에 직구라는 유혹이 더욱 달콤했다. 어차피 CPU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안일한 생각이 치명적이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주머니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매달 받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나가는 비용은 두 배씩 뛰는 느낌이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 절약의 본능은 때로는 인간을 지구 최고의 생존자로 만들기도 했지만, 때로는 뜻하지 않은 비극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고자 호기심에 베팅하다. 직구는 23만원. 한국은 34만원. 분명 싸다.
직구로 라이젠 9600X를 구매했다. 가격은 약 23만 원, 한국에서는 같은 모델이 약 34만 원 정도였다. 분명 가격 차이가 있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돈이지만, 내 돈 아껴보겠다는 심리를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굳이 직구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사달이 벌어진 뒤에야 깨달았다.
직구는 말 그대로 해외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다. 빠른 배송이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2주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서서히 불안감이 커졌다. 매일같이 배송 추적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초조한 날들을 보냈다. 직구 제품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은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제품도, 판매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 다행히도 벽돌이 오지는 않았다. 잘 도착한 시피유
드디어 CPU가 도착했고, 초기 한 달 정도는 문제없이 잘 썼다. 돈도 절약했으니 그때는 분명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슬금슬금 나타났다. 처음에는 사소한 렉 정도였는데, 게임을 할 때마다 CPU 온도가 이상하리만큼 높았다. 과열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는 하루에도 몇 번씩 블루스크린이 연속으로 떴다.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CPU가 고장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지만, 그 ‘거의 없다’는 확률에 내가 걸려들었다. 요즘 CPU는 공정이 갈수록 미세해져 예민하다고들 하는데, 하필이면 내 CPU가 그 예민한 성격을 제대로 드러냈다.
급히 판매자와의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예상대로였다. 판매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락처도 없고, 남아있는 건 구매 이력과 직구 사이트의 허울뿐인 영수증뿐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나와 같은 사례가 있는지 검색을 시도했다. 여러 커뮤니티와 인터넷 게시판을 뒤지며 최대한 침착하려 했지만, 이미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검색을 해본 결과, 비슷한 피해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이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RMA 서비스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여차저차 알게 된 루트로 직접 시리얼 번호를 적어 문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해당 CPU는 일반 소비자 판매용 제품이 아니며, 정상적인 경로로 판매된 제품이 아니므로 RMA 처리가 어렵습니다. 구매처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사라진 판매처에 문의하라니, 황당할 뿐이었다.

▲ 최후의 보루 알리 환불 찬스에 기대했지만, 마찬가지로 거부. 누가 알리가 안전하다고 했던가! 절대 믿지 말라!
물론 아직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편리하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직구를 선택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만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생기고 난 뒤에는 해결 방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저 인터넷에 비슷한 사연을 공유한 이들의 글을 보며 위안을 삼을 뿐이다.
직구는 이렇게나 위험할 수 있다. 당장 고장 나지 않는 제품을 받을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문제없이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직구로 CPU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 경험은 그저 운이 없었던 하나의 사례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내가 직접 겪은 바로는 CPU만큼은 절대 직구하지 말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싶다. 편리함 뒤에 숨은 위험을 제대로 깨달은, 한 번 제대로 당해본 사람으로서 말이다.
"살아가면서 돈 몇 푼을 아끼려다 더 큰 손해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직구가 대세라고 하지만, 모두에게 언제나 옳은 선택은 아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은 분명했다. 편리함의 이면에 있는 리스크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오랜 속담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다음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사연이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